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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깨달음

베트남 시계공 아저씨

by 하늘밑 2024. 10. 16.

베트남 시계공 아저씨

 

호치민 동네시장에 이동식 시계 수리점이 있습니다. 크기라야 선거용 기표소 정도, 바퀴가 밑에 달려있어서 이동이 쉽게 만들어 놨습니다. 베트남 수리공 아저씨, 먼지 폴폴나는  길가에 하루종일 앉아 손님을 기다리려면 심심한 게 당연하겠지요. 나부죽한 작업대 오른쪽을 보니 손수 제작한 거취대에 갤럭시탭으로 유튜브를 켜 놓고 정면에는 아이폰을 고정시켜 놨습니다. 나름 손재주가 있는 분이 분명합니다.

 

시계끈의 이음핀이 부러져 사용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수리하려고 눈에 봐두었던 이 이동식 수리점을 방문한 건 이틀 전입니다. 시계를 보여줬더니 이 아저씨, 이음핀이 아니라 시계클립 전체를 바꾸려고 합니다. 수리가격이 뛸 것은 뻔하죠. 묵시할 수 없었습니다. “잠깐만요, 아저씨? 이것만 갈아주셔요!” 작업대 위에 뒹굴로 있는 이음핀 하나를 손에 들어 도리머리 지으며 말했습니다. 순간 제단의 성물을 건드려 금기를 범하기라고 한 듯 저를 바라보는 아저씨의 눈빛이 휘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행동이 시퉁머리 터지듯 아저씨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저씨는 시계끈을 잠시 만지작 만지막 하더니 살천스런 말투로 “2,500원!” 잘라 말합니다. 이음핀 하나를 교환하는 값이라고 보기에는 시세를 짐작해 보건데 1,500원 정도가 분명 적당할 터, 큰 소리 내면 무람없다 할까봐 “넘 비싸요.” 조신하게 말했더니 이 아저씨 휙 토라지며 시계를 제게 툭 던져버립니다. 순간 욱 할 뻔 했습니다. 제 값 안줄 거면 가져가라는 거죠. 인심한 번 사납네 드잡이 하기도 그렇고, 근처에 시계방 찾기도 어렵고 해 음전한 말로 “아저씨, 그냥 해주세요.”하고 말았습니다. 냉정하게 따져봐도 1,000원 정도 더 비싸다고 흥분할 일은 아니니까요. 아저씨는 그제야 화가 누그러졌는지 서있던 저를 옆에 앉으라고 하더니 시계 끈을 고치기 시작합니다.

 

아저씨 행동은 좀 그악한 면이 있었지만 재야의 고수들은 늘 그런 법, 작업하는 걸 보니 두름손 하나 만큼은 감상하기에 지루할 틈 없이 끝내줍니다. 이음핀을 박아 끝을 잘라내고 시계를 자기 손목에 찼다 벗었다 이음쇠 망치질을 수회 반복하더니 뚝딱 고쳐줍니다. 동대문에서 방망이 깍았다던 노인의 이야기가 불쑥 떠올랐습니다. 시계를 차고 돌아오며 한길가에 시계를 수리하러 오는 손님이 하루에 몇이나 될까 생각해봤습니다. 아저씨가 값을 좀 높이 불렀다고 그렇게 나무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배터리 교환해야 할 시계가 하나 더 있는데 여기 다시 가져와 볼까 합니다. 그 땐 얼마를 부르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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