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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백석(白石)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바로 날도 저물어서,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내.. 2026. 11. 5.
내가 경계하는 것(書四戒) 내가 경계하는 것 소동파 出輿入輦 蹙痿之機 (출여입연 축위지기)수레나 가마를 타고 다님은 다리가 약해질 조짐이다 洞房淸宮 寒熱之媒 (동방청궁 한열지매)골방이나 다락방은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皓齒蛾眉 伐性之斧 (호치아미 벌성지부)어여쁜 여인은 건강을 해치는 도끼다. 甘脆肥膿 腐腸之藥 (감취비농 부장지약)맛난 음식은 창자를 썩게 만드는 독약이다. 此三十二字,吾當書之門窗幾席縉紳盤盂, 使坐起見之, 寢食念之. 元豐六年十一月,雪堂書。이 32자를 나는 문과 책상과 허리띠와 대야에 써놓고 앉으나 서나 보고, 자나 깨나 잊지 않으련다. 원풍 6년 11월 설당(雪堂)에서 씀. ❆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고, 한겨울에도 화장실 바닥까지 따스한 온돌 열선이 들어오는 21세기다. 손가락 하나 쓱 밀어 올리면 1초 만.. 2026. 11. 4.
연준이 연준이배수연 김 연 준연준이는 멋있는 아이였다키가 크고 운동을 아주 잘했다시험을 망쳐도 큰 소리로 웃고우리 집에 놀어 와 간식을 챙기는 엄마에게제가 뭘 도와드릴까요?조심스레 묻는 아이였다 하루는 우리 반에서 무지 못생기고 이기적인 애가생일 파티를 했다아무도 가지 않았는데연준이만 갔다그 애 엄마가 케이크를 잘라 주었다고 했다 연준이 부모님은방산 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했다연준이네 식탁 위엔 늘 먹다 남긴 생선이 있었다 연준이 동생은 병이 있었다병명은 너무 크고 새하얘서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른이 되는 기분이었다 연준이를 정말 좋아했는데 학년이 바뀌면서인사도 어색해지고졸업식에선 모른 척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새로 사귄 친구에게저 얘 동생이 백혈병이라고 속삭이면서이상하게 내가 끔찍하게 싫었다 .. 2026. 11. 3.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안희연 온전히 나를 잃어버리기 위해 걸어갔다언덕이라 쓰고 그것을 믿으면 예상치 못한 언덕이 펼쳐졌다그날도 언덕을 걷고 있었다 비교적 완만한 기울기적당한 햇살가호를 받고 있다는 기쁨 속에서 한참 걷다보니 움푹 파인 곳이 나타났다고개를 들자 사방이 물웅덩이였다 나는 언덕의 기분을 살폈다이렇게 많은 물웅덩이를 거느린 삶이라니발이 푹푹 빠지는 여름이라니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니 언덕은 울상을 하고서얼마 전부터 흰토끼 한 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했다 그뒤론 계속 내리막이었다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밤이 왔다언덕은 자신에게아직 토끼가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고요 다음은 반드시 폭풍우라는 사실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사실도모르지 않았다 .. 2026. 10. 29.
모차르트의 환상곡 D단조(K.397) 모차르트의 환상곡 D단조 연주를 듣고 모차르트의 환상곡 D단조(K.397)는 1782년경 비엔나에서 작곡된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품 중에서도 감정의 깊이와 극적인 전개가 매우 뛰어난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체 연주 시간이 6분 전후입니다. 연주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비극적이고 어두운 D단조 안단테(Andante)로 시작합니다. 슬픈 주제 선율이 흘러나오고 건반을 툭툭 치며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정형화된 박자 없이 펼쳐지는 아르페지오와 묵직한 하강음이 마치 즉흥 연주를 듣는 듯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후반부는 밝고 서정적인 D장조, 안단티노(Andantino)입니다. 단조의 어둡고 비장한 터널을 지나 모차르트 특유의 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영롱한 D장.. 2026. 10. 27.
샤워젤과 소다수 샤워젤과 소다수 고선경 너에게서는 멸종된 과일 향기가 난다 투룸 신축 빌라 보증금 이천에 월세 구천, 어떻게 해야 너를 웃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두 시간 동안의 폭우, 일주일 동안의 아침, 유리병 속 무한히 터지는 기포 현관에 놓인 신발의 구겨진 뒤축이 웃는 표정을 닮았어 너는 침대에 누워 있고 바람이 많이 부는 청보리밭에 가고 싶다 멸종된 기억을 가지고 싶다 너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릴 때 나는 사라진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아침의 어둠이 이제 익숙해그래도 같이 씻을까산책을 갈까 세상에서 가장 느린 산책로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게 우리의 재능이지 네 속의 아이스크림과 내 손의 소다수는 맛이 다르다 너의 마음은 무성하고 청보리밭의 청보리가 바람의 방향을 읽는 것처럼 쉬워 무한히 터지는 기.. 2026. 10. 22.
가을바람의 노래 가을바람의 노래 추성부(秋聲賦) / 구양수(歐陽脩,1007~1072) 구양자(歐陽子)가 밤에 책을 읽을 때 어떤 소리가 서남쪽에서 들려왔다. 휘둥그레 듣고선 말하였다. “기이하구나. 처음에 쏴! 쏴! 초목을 흔들며 불어오더니 홀연 솟구쳐 올랐다 철커덩 내려앉아 마치 파도가 밤에 놀라며 비바람이 갑작스레 닥쳐오는 듯하였다. 사물에 부딪쳐 쟁그랑거리면서 쇠가 진동하는 듯하기도 하고 적병에게 내달리는 병사가 재갈을 물고 질주하며 호령하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람과 말의 발소리만 들리는 듯하기도 하다.” 내가 동자에게 말했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고? 나가서 보거라.” 동자가 와서 말했다. “별과 달은 환하게 빛나고 밝은 은하수가 하늘을 길게 흘러가고 사방에 인적은 고요한데 나무 사이에서 무슨.. 2026. 10. 13.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내 여자친구는 비만입니다. 온 세상이 고통이라서 허기에 늘 집니다. 우리는 방이 두 개고 화장실이 하나인 집에서 빨래를 개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목이 죄다 늘어난 티셔츠를 접다가 포근한 보리수보다 헤픈 바다를 사랑해서 단맛보다 짠맛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미소 짓는 얼굴은 염주보다 동그란데 모든 일이 헛되고 무상해서 새로 돋아날 수가 없고 그래서 다이어트할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박자보다는 삶의 입자를 쪼개느라 의미 없는 댄스가 싫다고 합니다. 우리는 창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홉 번 태어난다는 포동한 고양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전생으로 돌아가면 틀림없이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우리로는 태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어서 미.. 2026. 10. 12.
권력자에게 필요한 것 권력자에게 필요한 것 추기(鄒忌)의 키는 여덟 자가 넘었고 신체는 늘씬하고 화려했다. 어느 날 아침에 의관을 갖추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아내에게 물었다. “나와 성북(城北)에 사는 서공(徐公) 중 누가 더 미남이오?” 그의 처가 말하였다. “당신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서공이 어찌 감히 당신에게 미치겠어요!” 성북의 서공은 제나라에서 잘 생기기로 유명한 자였다. 추기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이번에는 다시 첩에게 물어보았다. “나와 서공 중에 누가 더 미남이오?” 첩이 말하였다. “서공이 어찌 당신에게 미치겠어요!” 이튿날 어떤 손님이 와서 추기와 좌담을 하고 있었다. 추기가 그 손님에게 물었다. “나와 서공 중에 누가 더 미남인가?” 손님이 말하였다. “서공은 당신의 아름다움만 못합니다.” 그 다음 날.. 2026.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