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의 달력에는 늘 어제와 내일만 있다고 하지요? 반면 신의 달력에는 오늘만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도 내일의 오늘을 살뿐이니까요. 올해 새해를 맞이하니 조금 여유가 생겨 생각의 골도 깊어갑니다. 전에는 뭘 하려고 애썼는데 여기서는 뭘 안 하려고 애쓴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고 누군가는 생청붙이는 말을 합니다만 매 순간 마주치는 사소한 선택에도 삶의 가치가 묻어있기 마련입니다. 똑같은 하루를 4~50년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자신과 친해지는 일, 그게 고독이라면 신이 준 최고의 선물입니다. 기독교인에게 신앙의 성숙이란 온전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 짧은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새해에는 좀 더 겸허하고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매년 11월쯤 되면 조성진의 새 앨범이 노란 레이블로 유명한 도이치그라마폰에서 발매되어 나옵니다. 2015년 쇼팽콩쿠르 우승 이후 2016년에는 쇼팽피아노협주곡 1번과 발라드를, 2017년에는 드뷔시의 ‘달빛’이 포함된 베르가마스크모음곡을 선보였는데 올해 11월에는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0번 d단조(K466)”을 녹음해서 발매하였네요.
저는 이 곡을 아바도가 지휘하는 빈필하모니와 프리드리히굴다의 협연으로 녹음한 1974년판을 고등학교 때 성음크롬 테이프로 줄곧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둘 다 40대 초반이라 연주가 무르익었어요. 새로 나온 조성진의 협연 cd는 저도 아직 못 들어봤지만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2011년 당시 17세였던 조성진의 풋풋한 연주를 들을 수는 있어요. 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3위를 했던 실황연주입니다. 8년이 지나 25세에 다시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어떨지 저도 궁금합니다.
모차르트가 남긴 27개의 피아노협주곡 중 단조작품은 2개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런가요? 조성진이 이번 cd를 리코딩하기 전 도이치그라마폰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이 피아노협주곡 20번은 아름다움 뿐 아니라 ‘frightening’과 ‘scary emotion’이 있다”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조성진의 연주는 자유로움과 절제, 엄숙함과 섬세함이 숨 막히듯 정교함을 느낍니다. 오케스트라연주가 시작되고 얼마 있다가 슬며시 피아노 선율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요. 숨 막히듯 일품입니다. 특히 1악장 Allegro요. 조성진이 쇼팽이나 드뷔시를 지나 모차르트를 만나면서 특별히 이 곡을 선택한 건 나름 본인의 감성과 맞다는 이유가 있었겠지요? 피아노는 오케스트라와 경쟁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밀고 당기고...모차르트의 바람대로 조성진은 그걸 참 잘하는 것 같아요. CD는 사기도 어려우니 볼이 통통했던 조성진의 유튜브 연주를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30분 조금 넘어요. 다 듣고 나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K550)를 들으면 제 생각인지 모르지만 세트 같은 느낌입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바로 그 곡입니다. 되도록 칼 뵘이 지휘하는 빈필의 연주로 들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모차르트의 단조곡들은 슬픈데 어둡지가 않아요. 오히려 맑고 투명하다고나 할까요? 쨍한 파란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데 나만 애인과 헤어져 슬픈 느낌이라고나 할까?^^ 슬프지만 겉으로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를 잘 보여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qgoechPAns&t=145s
14th International Tchaikovsky Competition
Mozart 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No. 20 in D minor, K.466
Piano : Seong-Jin Cho (He was 17 years old, 3rd Pr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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