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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인생

브람스의 인터메조

by 하늘밑 2024. 10. 29.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의 인터메조 (Intermezzo In A major, Op.118, No.2)
 

 
브람스의 <여섯 개의 피아노 소품(6 Klavierstücke, Op.118)>은 1893년 완성된 피아노 독주곡으로 브람스가 슈만의 부인 클라라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여섯 개의 소품은 총 네 개의 인터메조(Intermezzo)와 한 개의 발라드(3번 Ballade), 한 개의 로망스(5번 Romanze)로 구성되어 있다. Op.118 중 가장 유명한 것이 2번 인터메조다.
 
인터메조는 원래 악곡 또는 오페라의 막 사이에 연주하는 막간음악이라는 뜻인데 브람스의 이것을 작은 형식의 피아노곡으로 작곡하였다.
 
내로라하는 피아니스트는 대부분 이 곡을 모두 연주했다고 보면 맞다. 특히 앵콜곡 일순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에게 2015년 쇼팽 콩쿨에서 우승한 조성진의 연주로 부쩍 유명해진 것 같다. 유튜브를 검색해 보면 안드라스 쉬프, 그리고리 소콜로프 등의 외국 연주자는 물론 우리나라의 선우예권이나 손열음, 김선욱 등이 연주하는 인터메조도 있다. 우연하게 듣게된 것 중에는 금호영재콘서트에서 임윤찬이 13살 무렵 연주한 곡도 있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로 유명한 임현정은 이 곡을 자신의 최애곡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2011년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브람스 인터메조’라는 이름으로 도이치그라모폰을 통해 발매한 앨범이 떠오른다. 또 한 명이 있다면 2022년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 라르스 포그트로 투병 중에 이 곡을 연주했던 것이 생각난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최고의 연주를 들려준다.
 
곡이 듣기에 좋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실 Op.118 전곡이 다 좋다. 2번 말고 하나 더 고르라면 5번 로망스를 꼽고 싶다. 곡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브람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때문이다. 14살 연상인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는 평생 클라라를 마음에 담고 살았고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클라라와 아이들을 보살펴 주기도 했다. 전형적인 외사랑이었다.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클라라가 죽기 전 브람스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를 위해 연주해 주었던 곡이 바로 인터메조 OP.118이라고 한다. 37세에 남편 슈만을 잃고 77세까지 살았던 클라라는 끝내 마음을 열어 브람스를 받아들여주지 않았지만 브람스의 음악에는 한없는 경이와 애정을 표현했다. 브람스가 60이 되어 클라라를 위해 작곡한 곡이니 이곡에는 브람스의 사랑과 인생의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번 인터메조 악보의 시작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Andante teneramente”, 느리게 애정을 갖고 연주하라. 강하지만 강하지 않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절제하며 호소하듯, 노래하듯 부르라는 말이다.
 
곡이 이러니 2번 인테메조는 피아노 연습생이면 누구나 잘 치고싶어 욕심을 내는 곡이 되었다. 하지만 치기에 매우 어려워 녹녹하지 않다는 평이다. 나는 피아노에는 잼병이지만 인터메조 악보를 구해 살펴본 적이 있다. 우선 악보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이게 무슨 악보가 합창곡 같냐~”였다. 브람스가 바흐를 좋아해서 바흐의 평균율 악보를 분석하고 연구했다는 건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가? 다성부의 악보에 수직적 화음 구성이 오라토리오의 합창곡을 연상하게 했다. 이 정도면 화성학이 아니라 수사학에 가깝다. 그리고 속칭 말하는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연속되는 선율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음색, 셈여림, 음높이를 정해 의미를 부여하는 연주기법이 황홀하다 못해 현란해 보였다. 브람스가 바로크 고전주의 음악을 살려냈다는 말이 이것이구나 싶었다.
 
악보에 나오는 악상기호를 대충 정리해 보았다.
 
dolce: 달콤하고 부드럽고 온화하게
legato: 음과 음 사이를 매끄럽게 연결해서
epress.: 감정을 담아 풍부하게
calando: 점점 여리고 느리게
cresc. un poco animato: 점점 크게 그러면서 조금 생기 있게
rit. più lento: 점점 느려지며 조금 더 느리게
in tempo: 제 속도로
una corda: 약음 페달을 밟아라
tre corda: 약음 페달을 떼고 연주해라
rf: 화음을 강조해라
 

piu lento: 점점 느려지며 조금 더 느리게

 
크레센도(cresc)는 알겠는데 점점 크게 그러면서 조금 생기 있게(un poco animato)는 어쩌라는 건지, 리타르단도(rit)는 알겠는데 점점 느려지며 조금 더 느리게(più lento) 하라니 어쩌라는 건지. 연주자의 연주를 직접 들어보기 전에는 참 난해한 주문이다. 특히 첫마디부터 등장하는 악보상 왼쪽 손에 해당하는 베이스 음이 1도 화음으로 매우 낮은 반면 오른손은 음은 레가토로 길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다가 12마디쯤 가면 사분음표가 말뚝 박아 놓은 듯 이어지고 그것도 점점 여리게 그러면서 더 느리게 연주하라고 단서를 달아 놓았다. 악보만 보면 왼손과 오른손이 따로 놀다가 영락없이 길을 잃을까 걱정스럽고 메트로놈이 필요 없는 지경이다. 그리고 주제라고 해야 하나? 못갖춘마디로 시작한 ‘도시레’가 중간중간 반복하며 곡을 끌어간다. A장조에서 F단조로 이어지는 화성이 애절함을 자아낸다. 이 모든 것이 연주자의 농익은 감성과 합쳐지면 지저분한 소리가 아니라 아주 아름다운 합창의 선율처럼 들린다. 클라라가 이 곡을 두고 ‘보석’ 같다고 했다는 말이 허투루가 아니다.
 
연주자야 고생스럽겠지만 연주를 듣는 우리는 더없이 행복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myLSZutC1dE

선우예권 (Yekwon Sunwoo, Piano), J.Brahms, 6 Piano Pieces No.2 In A Major Op.118 Intermez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