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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깨달음

교회를 교회 답게 하는 것

by 하늘밑 2025. 2. 3.

내수동 교회 주변은 공원과 같은 녹지, 옛 건물, 카페, 출판사, 미술관, 아파트촌과 외국인 빌라 등 전통과 현대가 어색한 듯, 어울리는 듯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수채화 그림 같은 곳이다. 스페이스 본이나 경희궁의 아침 같은 고급 아파트의 등장으로 교회 주변 사직동 달동네가 사라지고 이제는 부촌으로 둔갑했지만 옛 자취는 여전하다.

 

수선전도에 나오는 내수사, 내수동의 유래이기도 하다

 

내수동교회는 내 기억 속에 촌스러움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교회라기보다는 단독주택 몇 채가 모인 공동생활 공간이었다. 서울 시내에 이런 교회가 있다는 것에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1970년 말부터 이 교회에는 경상도, 전라도에서 상경한 촌스러운 대학생들이 부푼 신앙의 꿈을 안고 모여들어 촌스러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지금은 목회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신당 건물이 지어지면서 메가처지의 끝주자로 향방을 알 수 없이 달리는 그렇고 그런 교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옛 예배당이 남아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내수동 교회 옛 예배당

 

옛 예배당은 가정집을 증축하여 지었고 공간이 부족해 그 위로 가건물을 더 올렸다. 본당은 2층으로 200명 정도가 함께 예배드릴 수 있었다. 창문으로 비치는 따뜻한 햇볕이 아스라한 안개처럼 포근하게 내려앉는 모습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던 추억은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이었다. 지금은 대학부 예배당으로 쓰이고 있다. 고즈넉한 건물 위로 하얀 십자가 탑이 있다. 옛날에는 그곳에 종이 달려 있었다.

 

건물 1층에서 예배당 본당으로 은밀하게 통하는 좁은 계단을 광산의 터널처럼 올라가면 다락방 같은 곳을 지나 서너평 남짓 아늑한 공간이 나온다. 돌담장에 둘러싸여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다. 옛 예배당 뒤뜰이라고 할 수 있다. 내수동교회를 기억할 때마다 이곳이 가장 그립다. 느티나무는 사진에서 보이지만 건물을 뚫고 올라와 있다. 교회를 지을 때 느티나무도 건물의 일부로 생각하여 제 위치를 잡아 놓은 듯하다. 마치 조선시대 내수사 뒷 담장의 일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느티나무가 있는 옛 뜰, 건너편 진학사가 보인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신앙은 무형의 자산이지만 그 정신과 계보는 건물 속에 풍경 속에, 닳고 닳은 계단 속에 어려있다. 명멸하는 것은 신앙을 빙자해 욕심을 채우는 거짓 선지자들뿐이다. 그들은 느티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만도 못하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부디 내수동교회가 촌스러운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내수동교회 옛 예배당 최근 모습 by JANG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