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느낌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살아 있다는 건 느낄 수 있다는 말과 같겠지요. ‘느낌’이란 뭘까? 긴 겨울을 견디고 딱딱한 나뭇가지에 연두꽃 잎이 나는 설렘, 무언가 마음의 뿌리를 살살 건드리는 다는 말이겠죠. 굳었던 마음이 풀리고 세상이 조금은 살만해 지는듯한 한결 가벼운 마음이 드는 순간, 자연을 대할 때나 이성을 만날 때 느낌은 그렇게 찾아옵니다. 그런데 느낌은 세월이 흐르는 것처럼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마음을 툭 치고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무슨 느낌이었는지 큰 맘 먹고 사다가 꽃병에 꽂아 둔 꽃이 무심한 사이에 금방 시들어버리듯이 말입니다. 느낌은 물방울이 말라버리듯 한 순간 피어났다가 구름이 흩어지듯 없어집니다. 아쉽고 아련하고 서글퍼집니다. 살면서 만나는 느낌들은 내 머릿속의 생각과 얽혀서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느낌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기만 알아보는 자취가 남습니다. 그 무수한 흔적들은 얼룩이 지고 비틀려 추억이 되고 상처가 되고 그리움이 되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갑니다.
I had a dream my life would be
So different from this hell I'm living
So different now from what it seemed
Now life has killed the dream I dreamed
나는 꿈이 있었어요, 내 인생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옥과는 아주 다를 거란 꿈이
지금 내 삶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요
이제는 삶이 내가 꿨던 꿈을 무너뜨렸어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中 ‘I Dreamed a Dream’-
지워지지 않는 흔적, 그건 삶의 고통과도 연결됩니다. 사실 고통은 절에 가서 백팔배를 올려도, 기도원에 가서 사십일 금식기도를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종교적인 열심일 뿐입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람은 불고, 꽃은 피고, 비는 내리고, 해는 뜨고 집니다. 고통은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떠한 형태로든 스스로 감당해야 할 짐입니다. 아무도 고통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외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도덕경(道德經)>에 ‘천지불인(天地不仁)’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못하다’, 천지는 만물의 끊임없는 변화에 있어 어진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섭리대로 운행할 뿐이란 뜻입니다. 쉽게 말해 신은 자비롭지 않다는 말입니다. 역으로 그렇게 때문에 모두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제로섬 게임처럼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고통을 전제로 하는 경우도 있고 왜 그런 고통이 오는 지 원인조차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저 알 수 없는 고통에 때론 원망하고 때론 슬퍼하고 받아드리면서 서로 위로할 뿐입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에서 판틴(Fantine)의 노래가 심금을 울리는 이유입니다.
얼룩지고 비틀린 흔적이 딱지처럼 남은 후에야 비로소 세상을 둘러볼 여유가 생깁니다. 도연명(陶淵明)이 <음주(飮酒)> 시에서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동쪽 울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네”라고 한 바로 그런 모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시처럼 꽃은 피었다 지며 설렘으로 왔다가 아쉬움으로 사라집니다. 꽃을 보며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어찌보면 무언가 느끼고 있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일지 모릅니다. 그걸 아는 사람들의 삶은 꼭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지루하거나 권태로울 틈이 없습니다.
'일상의 깨달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나치게 따지지 마라 (7) | 2024.10.16 |
---|---|
호치민 푸꾸옹 마을 새집 기증행사에 다녀와서 (0) | 2024.10.16 |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1) | 2024.10.15 |
희망이란 (0) | 2024.10.15 |
수학 학원에서 생긴 일 (0) | 2024.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