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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단순한 열정의 불편함 1991년 발표한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은 얇은 분량에 비해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첫 장부터 등장하는 노골적인 성적 묘사는 이 소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미리 선언한다. ‘읽으려면 각오하라’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이번 글쓰기는 이런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 주인공 ‘나’는 우연히 만난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밀월을 시작한다. 책의 첫 문장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할 만큼 나의 모.. 2026. 1. 21.
2026 1월 21일 - 글 잘 쓰는 비결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글 잘 쓰는 비결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김정선 작가가 있다. 그분은 전업작가이기 이전에 오랜 기간 출판사의 외주 교정자로 비문이나 문장의 순서를 바로잡는 일을 해 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자신만의 철학이 생겼다. 그는 글쓰기를 소통의 언어이자 철저한 기술이라고 말한다. 글쓰기는 나만의 언어를 독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모두의 언어로 바꾸는 ‘번역’이고, 동시에 ‘타협’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100%를 그대로 쏟아내는 게 아니라 상대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조절하는 일이다. 글쓰기는 축구나 수영처럼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고쳐야 는다. 교육 수준이 높다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 2026. 1. 21.
2026 1월 19일 - 종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종교에는 두 가지가 있다.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종교와 인간을 구속하는 종교다. 신에게서 자유를 느끼지 못한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나 자신이 잘못되었거나, 내가 믿는 신이 잘못되었거나. 신앙이 불안을 키우고 삶을 옥죈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라 통제다. 자유는 욕망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욕망이 그대로 방치될 때 쾌락과 유흥으로 추락한다. 욕망이 자유가 되기 위해서는 욕망하는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욕망하되 휘둘리지 않는 능력이 성찰이다.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기 보다 절제할 수 있는 자유의 능력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자유가 소중해진다. 만약 신에 의한 구속을 자유라고 믿는다면, 그 구속의 대가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 신의 이름으로 내 삶이 조금씩 소멸해.. 2026. 1. 19.
2026 1월 18일 - 브런치 작가가 되다 브런치 작가가 되다 티블로그의 글이 오늘까지 300개가 되었다. 2024년 10월에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15개월째다. 2026년 1월, 밀어 두었던 일을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에 응모했고 다행히 한 번에 선정이 되어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티블로그가 글을 쓰는 공장 같은 곳이라며 브런치스토리는 상점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로그를 통해 다듬어진 글들을 브런치에 소개할 예정이다. 조지 오웰은 자신의 글쓰기를 ‘순전한 이기심(Sheer egoism)’, ‘미학적 열정(Aesthetic passion)’, ‘역사적 충동(Historical impulse)’, ‘정치적 목적(Political purpose)’이라는 네 가지 동기로 설명했다. 그는 불의를 고발하고 사회를 바꾸려는 정치적 목적을.. 2026. 1. 18.
2026 1월 17일 - 너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 우연히 2025년 우리나라 신생아 이름 순위를 정리한 사이트를 보게 되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한자의 뜻보다 부르기 쉽고 친근하며 감각적인 발음을 선호한다. 항렬을 따르는 방식은 이미 낡은 전통이 되었다. 이름을 먼저 짓고 거기에 어울리는 한자를 찾으려고 작명소나 철학관을 이용하는 풍경도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다. 순위를 보니 남자아이 이름 상위에는 도윤, 이준, 하준이, 여자아이 이름에는 서아, 이서, 지안이 올랐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다. 사람의 이름이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이름의 존중을 거의 신앙으로 삼았던 유학의 전통을 생각하게 된다. 이름에 대한 극단적인 숭상은 소위 ‘피휘(避諱)’라는 풍습을 낳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은.. 2026. 1. 17.
인생 얼마란 말인가! 인생 얼마란 말인가! 短歌行(단가행) 조조(曹操) 對酒當歌, 人生幾何(대주당가, 인생기하)술 마시고 노래 부르니 인생 얼마란 말인가!譬如朝露, 去日苦多(비여조로, 거일고다)비유하면 아침이슬 같으니 지난날 고생이 많았구나慨當以慷, 憂思難忘(개당이강, 우사난망)슬프고 탄식하여도 근심스러운 생각 잊기 어려우니何以解憂, 唯有杜康(하이해우, 유유두강)무엇으로 시름을 풀 것인가? 오직 술이 있을 뿐靑靑子衿, 悠悠我心(청청자금, 유유아심)푸르른 그대의 옷깃, 아련한 나의 마음但爲君故, 沈吟至今(단위군고, 침음지금)다만 그대 때문에 이제껏 나직이 읊조렸네呦呦鹿鳴, 食野之苹(유유녹명, 식야지평)우우 우는 사슴, 들판의 햇쑥을 뜯는구나我有嘉賓, 鼓瑟吹笙(아유가빈, 고슬취생)내게도 반가운 손님 있어 거문고 타고 생황을 분다.. 2026. 1. 16.
2026 1월 16일 - 생광스러운 하루 생광스러운 하루 스마트폰 갤러리를 넘기다 오래전 찍어 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여러 해 전 강원도 원주, 박경리 문학의 집에서 찍은 벽면의 문구였다. 박경리 선생은 1980년 원주로 이사해 살며 대하소설 『토지』 4부와 5부를 집필했다. 기억에는 문학의 집 주변에 작가가 살던 옛집이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었고 손수 가꾼 텃밭, 작은 연못, 산책로가 참 고즈넉하고 좋았었다. 전시실을 둘러보다 우연히 마주친 문구.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지만 분명 감동이 있어 사진으로 남겼을 것이다. 문구 아래에는 출처가 뭐라 적혀있는데 글씨가 작아 보이지 않았다. 검색을 해보니 박경리 선생이 남긴 유고시 중에서 「산다는 것」의 마지막 연이었다. 산다는 것 체하면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감기 들면바쁜 듯이 뜰 .. 2026. 1. 16.
2026 1월 15일 - 『적벽대전』, 뻔한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 『적벽대전』, 뻔한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 오랜만에 넷플릭스에서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을 다시 봤다. 해마다 한 번쯤은 꼭 보게 된다. 개봉한 지 20년 가까이 된 영화지만, 『첩혈쌍웅』의 오우삼 감독 작품이라는 점, 양조위, 금성무, 장첸, 린즈링, 조미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오늘날 영화에 천문학적 금액의 CG를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수많은 엑스트라가 동원된 전투 장면은 다큐멘터리를 보듯 어색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이 영화의 미덕이라 할 만했다. 『적벽대전』을 반복해서 보게 되는 이유는 화려한 캐스팅이나 거대한 스케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기 208년, 장강 적벽 아래에서 위, 촉, 오 세 나라가 중국의 패권을 놓고 .. 2026. 1. 15.
2026 1월 14일 - 성장하고 있나요? 성장하고 있나요? 영화 『비치』, 『설국열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틸다 스윈튼이 방한하여 한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녀는 특유의 영국식 억양으로 망설임 없고 과장 없이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말했다. 사회자: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틸다 스윈튼: 인생에서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다고 느낄 때, 더 이상 자신을 문밖에 세워두지 않아도 될 때,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나로 살 수 있을 때 말이죠.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지 않아도 되며,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아도 될 때. 불편한 관계를 억지로 견디지 않아도 되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입니다. 그녀가 .. 2026.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