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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하루일기

2026 1월 15일 - 『적벽대전』, 뻔한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

by 하늘밑 2026. 1. 15.

『적벽대전』, 뻔한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

 
오랜만에 넷플릭스에서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을 다시 봤다. 해마다 한 번쯤은 꼭 보게 된다. 개봉한 지 20년 가까이 된 영화지만, 『첩혈쌍웅』의 오우삼 감독 작품이라는 점, 양조위, 금성무, 장첸, 린즈링, 조미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오늘날 영화에 천문학적 금액의 CG를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수많은 엑스트라가 동원된 전투 장면은 다큐멘터리를 보듯 어색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이 영화의 미덕이라 할 만했다. 『적벽대전』을 반복해서 보게 되는 이유는 화려한 캐스팅이나 거대한 스케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기 208년, 장강 적벽 아래에서 위, 촉, 오 세 나라가 중국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지략과 전술의 향연, 그 서사적 밀도가 여전히 매혹적이고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100만 대군을 거느리고 형주를 집어삼킨 위나라 조조에 맞서 손권의 결단을 끌어내는 제갈량의 ‘격장지계(激將之計)’, 말없이 거문고를 타며 서로의 속내를 떠보는 제갈량과 주유의 묘한 긴장, 주유와 연합해 거북 등 모양의 진형으로 적의 퇴로를 봉쇄하는 ‘구궁팔괘진(九宮八卦陣)’, 손씨 3대를 섬긴 노익장 황개의 거짓 항복과 화공, 봉추 방통의 연환계까지. 역사서라기보다 무협지를 보는 듯 쾌감을 자아낸다.
 
적벽대전은 역사에 기반한 전투이면서 동시에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적 허구에 크게 의존한 이야기다. 소설은 제갈량을 지나치게 신격화해 모든 계략의 중심인물로 세우지만 실제로 적벽대전의 승리를 이끈 주역은 오나라의 주유와 노숙이었다. 유비와 손권이 연합한 것은 사실이나, 유비의 병력은 장판파의 패전으로 많아도 1만을 넘기지 못해 ‘연합’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실제 주유는 냉철하고 유능한 총사령관이었지만, 소설 속에서는 질투심 많은 인물로 축소되어 제갈량에게 번번이 밀려 결국 화병으로 죽고 만다. 적벽대전에서 조조군의 패배 역시 화공법보다는 북방군 중심의 병력이라 수전에 약했고, 오랜 전투와 전염병까지 겹친 결과였다. 황개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은 극적 효과를 위한 장치에 가깝다. 하후돈, 하후연, 장합 같은 장수들과 사마의, 가후, 유엽, 정욱 같은 뛰어난 책사들을 거느린 조조가 패한 이유는 전략적 판단의 실패였지 하늘의 도덕적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삼국 시대의 실질적 주인공은 촉나라의 유비가 아니라 위나라의 조조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정사 『삼국지』보다 『삼국지연의』와 영화 『적벽대전』에 열광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삼국지연의』가 역사서가 아니라 명나라 때 완성된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한나라, 유비, 촉한으로 이어지는 ‘촉한 정통론’을 지지하는 허구적 세계의 산물이다. 그러기 위해서 조조는 간신이 되고, 유비는 의인으로, 제갈량은 유비의 꿈을 실현하는 신화적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가장 약한 주인공이 자기능력을 각성하며 숨어살던 고수를 만나 악의 세력을 평정하고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는 인류역사를 관통하는 흔하면서도 강력한 서사다. 우리가 제임스카메론의 영화 『아바타』를 그 뻔한 줄거리에도 계속 보는 이유를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소설은 사실을 기록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만든다. 적벽대전의 승리을 조조군에 닥친 전염병 때문이라고 말하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갑자기 동남풍이 불고, 서로 속고 속이는 숨이 멎을듯한 기막힌 계략이 맞물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야 이야기가 된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통쾌함과 감동, 그리고 카타르시스의 서사다. 당시의 독자들이 원한 것은 계산 빠른 현실적 관료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알고 의리를 지키며 난세를 헤쳐나가는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유비와 관우, 제갈량은 그런 집단적 욕망의 결정체다. 조조에 대한 혹독한 비판 역시 능력은 있지만 민심을 얻지 못한 권력자에 대한 우회적 조롱과 경고로 읽을 수 있다.
 
소설이나 영화는 역사를 왜곡했다기보다, 폭력적인 권력이 정의에 의해 결국은 꺾인다는 신화를 역사적 사실 위에 덧칠해 재밌게 만든 결과물이다. 허구의 세계는 언제나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보다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가”를 더 정직하게 반영한다. 그것이 못다 이룬 꿈을 이뤄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면 더 그렇다.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옆을 지나던 딸이 묻는다. “아빠, 무슨 내용이길래 그렇게 재밌게 봐?” 나는 웃으며 답했다. “세상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배도 없다는 이야기야.” 딸이 웃으며 말한다. “그건 좀 허무한데?” 장강의 물결 위에 허무하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포말이 어쩌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 허무한 이야기에 우리 인생을 잠시나마 비추어 볼 수 있다면 영화를 보는 재미로 충분하다.

 

滾滾長江東逝水(곤곤장강동서수)

浪花淘盡英雄(낭화도진영웅)

是非成敗轉頭空(시비성패전두공)

靑山依舊在(청산의구재)

畿度夕陽紅(기도석양홍)

 

도도하게 흐르는 장강 동으로 흐르고

물 위의 포말처럼 영웅들 스러져갔네

옳고 그름 성공 실패 돌아보니 헛되네

푸른 산은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인데

그동안 저녁 노을 몇 번이나 붉었을까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서사(序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