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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사소한 독서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by 하늘밑 2026. 1. 21.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단순한 열정의 불편함

 
1991년 발표한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은 얇은 분량에 비해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이란 점이다.(소설 속 나 = 작가 에르노) 첫 장부터 등장하는 노골적인 성적 묘사는 이 소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미리 선언한다. ‘읽으려면 각오하라’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이번 글쓰기는 이런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
 
에르노는 1980년대 후반 매력적인 유부남과 2년간 나눴던 불륜이 자신에게 미친 감정적 영향을 회상한다. 당시 에르노는 50세에 가까웠고, 그녀의 연인은 미남의 대명사 알랭들롱을 닮은, 세련되고 옷 잘 입는 동유럽 출신의 남자로 그녀보다 13살 어렸다. 책에서 'A' 로 불리는 이 남자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강렬해서 일상은 그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무너졌다 다시 세워졌다 한다.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에르노는 이 작품에서 연인의 시간에 맞춰 삶을 거의 온전히 살아가는 데서 오는 감정적 충격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기다리는 모습, 그가 오기 직전에 허겁지겁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모습, 사랑을 나누던 즐거운 오후, 그리고 그가 떠난 후 밀려오는 극심한 피로감과 그에 뒤이어 찾아오는 부재의 고통까지, 모든 감정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그 사람이 떠나자 엄청난 피로가 나를 짓눌러왔다. 곧바로 집 안을 정리하지 못했다. 나는 유리잔, 음식 부스러기가 남아 있는 접시,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 방바닥과 복도에 흩어져 있는 겉옷과 속옷들, 카펫에 떨어진 침대 시트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나하나 어떤 몸짓이나 순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그 물건들을, 그것들이 이루는 생생한 무질서를 지금 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 그것들은 미술관에 소장된 다른 어떤 그림도 내게 주지 못할 힘과 고통을 간직한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이 소설은 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로맨스도 구원의 서사도 없다. 대신 사랑과 욕망, 집착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점령하는지를 기록하듯 보여준다. 에르노는 자신의 경험을 해명하거나 고백하지 않는다. 감정을 설득하지도 않는다. 다만 일어난 일들을 나열한다. 책을 덮고 나면 뜨거움 대신 메마른 여운만 남는다.
 
일반적인 연애 소설은 문장 사이에서 긴장과 열기가 느껴진다. 대화에서 드러난 감정의 진폭이 독자를 끌어당긴다. 이 소설은 정반대다. 문체는 지나치게 차갑고, 감정의 흔적을 일부러 지운 듯하다. 설렘도, 고양도 없다. 사랑의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는 사실만 남는다. 도덕적 판단이나 독자와의 은밀한 교감도 없다. 남자를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집요한 반복만이 비어버린 일상을 채운다.
 
이런 글쓰기는 에르노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플랫 라이팅(flat writing)이라고 부르는 투박한 글쓰기 방식이다. 감정을 치장하는 언어를 거부하고 문장을 의도적으로 평평하게 만들어 삶을 건조하게 기록한다. 김훈의 소설에서 느꼈던 단문 중심의 서술과도 닮아 있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대신 오직 행동만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신문에서 그 사람의
나라에 관한 기사를 읽는다.
옷과 화장품을 고른다.
그에게 편지를 쓴다.
침대 시트를 갈고 방에 꽃을 꽂아 놓는다.
 
모든 행동은 남자를 위한 것이지만 드러나는 감정은 철저하게 숨긴다. 이 여자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쉽게 알 수 없다. 에르노의 담담한 행동을 밋밋하게 묘사할 뿐이다. 독자는 답답함을 느끼며 숨이 막힌다. 글에 설명도 없고 반성이나 변명도 없다. 글은 여자가 느끼는 열정 대신에 그를 만나느라 하루가 어떻게 소비되고 망가지고 있는지 보여줄 뿐이다. 여자에게 공감하며 응원을 보내기도 그렇다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왜 그런 것일까? 독자가 느끼는 답답함은 자기 안에도 이런 비슷한 기억이나 감정의 편린이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이성보다 감정에 삶을 내어주고 싶은 순간이 있다. 불꽃처럼 타올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이성을 맡기고, 파멸로 끝나버릴 줄 알면서도 끝을 향해 질주하며 허무한 일상을 반복하는 어리석음 말이다. 이 책의 불편함은 열정으로 기억해야 할 것들은 모두 제거하고 부질없어 보이는 행동만을 계속 떠오르게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 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열정은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모된다. 기다림이 목적이 되고, 삶은 그 기다림에 종속된다. 이 소설은 이별의 상실이 아니라 자아의 상실에 가깝다. 앙상한 문장들은 독자를 잠시 열광시켰다가 곧바로 식혀버린다. 독자는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당혹감과 불편함, 그리고 야릇한 쾌감을 느낀다.
 
그와 만난 후 6개월쯤 지나 에르노는 'A'가 다른 여자와 만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고,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에도 예전처럼 그의 곁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사실, 그녀는 그의 이별을 두려워하고, 순간의 쾌락은 미래의 고통으로 물들어 간다. 한편으로는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아 관계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국 다가올 공허함을 견디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A' 는 결국 프랑스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에게 전화가 오면 자선단체에 500프랑을 기부하겠다고 맹세하며 하루 종일 기다리는 행동,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고통을 덜어줄 것이라 믿고 낙태했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는 기행은 병리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형태만 다를 뿐 이런 행동은 우리의 삶에서도 낯설지 않다. 의미 없어 보이지만 우리 감정에 보편적으로 있는 은밀한 어떤 것들이다. 에르노는 그것을 거침없이 표현할 뿐이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에르노의 글쓰기를 단순한 노출증이나 결벽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솔직한 자기 고백은 이미 관습적인 문학의 경계를 넘어 수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은 금기에 도전하는 이 용기를 평가한 결과일 것이다. 소설은 불편함의 껍질을 벗어내고 더 솔직한 자신의 얼굴과 단순하게 마주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단 한 번에 읽어야 할 한 호흡이다.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면 작가의 의도는 일단 성공한 샘이다. 추운 겨울, 옆에 벽난로 장작이 타고 있고 단순한 열정에 몸을 맡겼던 공허하지만 선명한 옛 추억이 있다면 책읽기에 더 좋을 것이다.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