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고 있나요?
영화 『비치』, 『설국열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틸다 스윈튼이 방한하여 한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녀는 특유의 영국식 억양으로 망설임 없고 과장 없이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말했다.
사회자: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틸다 스윈튼: 인생에서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다고 느낄 때, 더 이상 자신을 문밖에 세워두지 않아도 될 때,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나로 살 수 있을 때 말이죠.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지 않아도 되며,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아도 될 때. 불편한 관계를 억지로 견디지 않아도 되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입니다.
그녀가 말한 성공에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돈, 지위, 명성에 대한 얘기가 하나도 없었다. 사회가 흔히 규정한 성공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재능과 환경, 나이와 성별, 인종과 계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가능하다. 그 과정은 대개 치열한 경쟁을 전제로 하며, 누군가의 성공은 또 다른 누군가의 패배를 의미한다. 그것뿐인가. 성공한 사람은 극히 소수이고 나머지는 좌절과 자기부정을 경험해야 한다.
틸다가 말한 성공은 그것과는 확연하게 정반대의 방향에 있었다. 그녀는 ‘이기는 삶’이 아니라 ‘숨지 않아도 되는 삶’을 말하고 있었다. 자신을 부정하고 싶을 때, 남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싶어질 때, 그 유혹을 거슬러 자기 자신으로 사는 용기 있는 삶이다. 오직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기에 비교의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오롯 자기 자신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같은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가 흔히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성공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은 본래 그런 의미가 아니다. 원문은 이렇게 말한다.
대방무우(大方無隅), 대기만성(大器晩成), 대음희성(大音希聲), 대상무형(大象無形).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더디 이루어지며, 큰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
문맥으로 보면 ‘만성(晩成)’은 ‘늦게 이루어진다’가 아니라 ‘정해진 완성이 없다’는 뜻에 가깝다. 큰 그릇은 완성된 상태로 고정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만들어져 갈 뿐, 완결된 모습으로 멈추지 않는다. 그 과정 속에 완성이 있다.
틸다 스윈튼과 노자가 공통으로 말하는 성공은 완성이 아니라 성장에 있다.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자기 성찰과 성실함이다. 부와 명예가 따라온다면 덤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없다고 해서 투정할 일이 아니다. 대기업의 CEO가 되지 못했다고, 손흥민 같은 추구 선수가 되지 못했다고 삶이 실패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 이미 성공한 삶이다.
최근 유튜브를 보니 젊은세대를 유혹하는 성공팔이 동영상이 넘쳐난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젊은 나이에 성공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동영상에 혹한다. 영상은 돈을 투자하면 성공의 비법을 알려준다는 다단계식 사기법으로 청소년들을 끌어모았다. 실제 아무런 이윤 창출 없이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을 이용해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의 폰지사기다. 알바비나 월급만으로는 자산의 가치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조급함, 돈과 같은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면 인생의 의미가 없다고 믿는 몰가치. 적은 노력으로 떼돈을 벌려고 하는 성공신화는 그 성공에 목 매는 사람들을 파멸로 이끈다.
성공은 ‘무엇이 되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는가’의 문제다.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 있고, 성장은 그 과정의 다른 이름이다. 성공을 위해 성장을 포기하고 있다면 큰일이다. 평생 쓰지도 못할 돈을 벌기 위해 삶을 소진하고 있지는 않은지, 불확실한 미래의 성공을 위해 아이들을 끝없는 성적경쟁으로 몰아넣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물어야 한다. 남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다.

'2026 하루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 1월 16일 - 생광스러운 하루 (1) | 2026.01.16 |
|---|---|
| 2026 1월 15일 - 『적벽대전』, 뻔한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 (1) | 2026.01.15 |
| 2026 1월 13일 - 그런 날도 있는 것이다 (1) | 2026.01.13 |
| 2026 1월 12일 - 화이부동(和而不同)에 대하여 (0) | 2026.01.12 |
| 2026 1월 11일 - 어머니를 추모하며 (1) | 2026.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