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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하루일기

2026 1월 17일 - 너의 이름은

by 하늘밑 2026. 1. 17.

너의 이름은

 
우연히 2025년 우리나라 신생아 이름 순위를 정리한 사이트를 보게 되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한자의 뜻보다 부르기 쉽고 친근하며 감각적인 발음을 선호한다. 항렬을 따르는 방식은 이미 낡은 전통이 되었다. 이름을 먼저 짓고 거기에 어울리는 한자를 찾으려고 작명소나 철학관을 이용하는 풍경도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다. 순위를 보니 남자아이 이름 상위에는 도윤, 이준, 하준이, 여자아이 이름에는 서아, 이서, 지안이 올랐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다. 
 
사람의 이름이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이름의 존중을 거의 신앙으로 삼았던 유학의 전통을 생각하게 된다. 이름에 대한 극단적인 숭상은 소위 ‘피휘(避諱)’라는 풍습을 낳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은 별세와 함께 ‘휘(諱)’라고 불리는데 자식은 절대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입에 올리거나 자신의 글 가운데 언급해서도 안 되었다. 이는 존귀한 인물의 이름자나 연호를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함부로 부르거나 쓰지 않으려는 오랜 전통이었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는 평생 자신의 시에 ‘한(閑)’이라는 글자를 쓰지 못했다. ‘한가하다’라는 뜻의 이 평범한 글자를 시에 쓸 수 없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 이름에 ‘한(閑)’자가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난정기(蘭亭記)」로 유명한 왕희지(王羲之)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이름에 ‘정(正)’이 들어가 정월을 ‘일월(一月)’이나 ‘초월(初月)’로 표기해야 했고 ‘바르게하다’라는 뜻으로 꼭 써야 할 경우도 비슷한 의미인 ‘정(政)’으로 바꾸어 써야 했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이름에 ‘담(談)’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역사상 실존 인물인 조맹담(趙孟談)을 조동(趙同)으로 고쳐 표기했다. 당나라 때의 이하(李賀)는 아버지의 이름이 진숙(晉肅)이었기 때문에 발음이 ‘진’으로 시작하는 과거시험 진사과(進士科)시험을 포기하려고 하다가 한유(韓愈)의 도움으로 응시하여 급제하였지만 세간의 곱지 않은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역대 왕뿐 아니라 중국 연호에 나오는 한자를 피해써야 했다. 고구려 연개소문은 천개소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 고조의 이름인 ‘이연(李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경상도 대구는 한자로 ‘大丘’였으나 대성인 공자의 이름이 구(丘)여서 ‘大邱’로 바꿔 썼다. 경복궁의 3개 문 중의 하나인 '흥례문(興禮門)'은 원래 이름이 ‘홍례문(弘禮門)’이었으나 청나라 건륭제의 이름이 ‘홍력(弘歷)’이라 피휘하여 썼다. 우리 조상들에게 ‘피휘’는 불편할 뿐만 아니라 두려움 자체였다. 조선의 왕들은 백성들이 평상시 한자를 잘 쓸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자 했다. 세손이 태어나 이름을 지을 때 잘 사용하지 않는 희귀한 글자를 골라 이름자로 썼고 글자를 한 자라도 줄여 외자로 지었다. 예를들어 세종의 이름은 ‘이도’(李裪), 인종은 ‘이종’(李倧), 영조는 ‘이금’(李昑), 정조는 ‘이산’(李祘)이었다. 모두 피휘 해야 할 글자수를 줄이고자 함이었다.
 
동양 사회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 이름과 명분은 곧 그 사람의 실체이자 도덕적 기반이었다.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면 이름값을 해야 한다고 믿었고, 정통성과 명분을 해치는 일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바로잡으려 했다. 죽으면 사라질 이름에 집착한 이유를 곱씹어보면, 실질에 부합하는 이름을 후세에 남김으로써 헛된 명성을 좇아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못하게 하려는 경계의 뜻이 더 컸다.
 
지금은 이름 하나로 살아가는 시대가 아니다. 본명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아이돌을 비롯한 연예인들이 불렀을 때 떠올리기 쉽고, 본인의 외모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예는 흔하다. 특정 직업이 아니어도 이유만 있으면 이름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며, 부캐 이름을 만들어 재밌게 사용하기도 한다. 이름 하나로 자기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없어서다. 이는 선인들이 호를 자유롭게 지어 부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좋은 전통이 될 것이란 생각도 하게된다.
 
그럼에도 이름은 여전히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이름의 무게가 가벼워진 시대일수록 이름에 걸맞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오히려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름을 바꿀 수는 있어도 이름이 요구하는 나의 인생의 책임까지 벗어 던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