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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사소한 독서

니체 "안티크리스트"

by 하늘밑 2024. 12. 7.
안티크리스트,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역, 아카넷 2013

 

니체가 보는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불교는 기독교보다 훨씬 현실적이어서 문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제기한다. 무엇보다 인간이 부딪히는 고통의 문제를 신이나 원죄와 같은 허구적인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불교는 선악을 넘어서 있다. 기독교는 선과 악이 율법에 의해 영원히 불변적으로 정해져 있으나 불교는 인간의 고통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선으로 본다. 즉 인간은 자신의 행복과 고통 그리고 자신의 행위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관계를 엄밀히 관찰하여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불교는 모든 원한과 적개심으로부터 행방된 쾌활한 상태를 지향하는 반면에 기독교는 정복된 자와 억압받는 자들이 자신을 괴롭히던 자들에 대해 가진 원한과 적개심을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원한과 적개심을 정당화하고 심화한다.
 
기독교는 육체 및 본능과 끊임없이 투쟁하지만 그것들의 불가항력적인 힘을 경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책하고 열정적으로 용서를 간구한다. 불교는 적정(寂靜)이 지배한다면 기독교는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갈구하는 통곡이 지배한다.
 
기독교는 신과 만나는 상태가 간질병적인 상태다. 죄와 지옥의 형벌같이 음산하고 자극적이다. 불교는 반면 밝은 상념을 북돋우려고 한다.
 
불교는 완전한 최고의 상태는 인간 자신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기독교는 최고의 것은 도달 불가능하다. 오직 신의 선물과 은총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불교는 다른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배타적이고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을 증오한다.
 
불교에서 인격신이란 인간이 삶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적인 관념으로 본다. 불교는 그러한 관념의 실재성을 주장하면서 그러한 관념만이 절대적인 진리하고 믿는 것을 배격한다.


 
기독교는 문명화되어 있지 않다. 기독교는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참이라고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 만약 죄로부터 구원받았다고 믿는 데 행복이 있다면 이를 위해 필요한 전제는 자신이 실제로 죄를 지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죄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진리자체보다는 믿음이다. 진리에 대한 탐구는 기독교에서 금지된다.
 
니체는 예수를 상징주의자라고 본다. 천국은 마음의 한 상태일 뿐이며 지상을 넘어서 존재하는 특정한 공간적 차원이나 죽은 후에 오는 특정한 시간적 차원과는 전혀 무관하다. 신의 아들이란 말은 모든 사물이 성스러운 것으로 총체적으로 변용되는 지복의 느낌으로 진입하는 사건을 상징한다.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가를 보여주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음을 택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중상과 탄압에 저항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권리를 변호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사랑했다. 예수가 인류에 남긴 것은 특정한 교리체계가 아니라 이러한 삶의 모습이다.
 
바울은 존재 전체의 중심을 존재의 배후로, 내세의 피안으로 옮겨 놓아 버렸다. 이에 따라 그는 예수의 부활을 날조했다. 근본적으로 그는 구세주의 살아있는 삶을 전혀 이용할 수 없었다. 바울은 대중을 지배했다. 영혼불멸이나 최후의 심판만큼 좋은 수단은 없었다. 신의 권력에 위탁하고 성직자들의 지배에 복종하게 했다.
 
니체에게 예수란 “숭고한 것과 병적인 것과 유치한 것이 기이하게 결합되어 있는 가장 흥미로운 데카당”이다. 니체는 예수의 정신이 부처와 마찬가지로 고통과 자극에 대한 지나친 민감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예수의 정신과 불교의 정신은 동일한 생리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면서 내면적인 평화로 도피해 들어가려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본다.
 
기독교는 인간들에게 죄악감을 심어주고 하느님의 은총만을 기다리게 하는 종교다. 기독교는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가 아니라 믿음의 종교가 되었고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을 갈구하는 종교가 되고 말았다.


 『안트크리스트』 부록 「그리스도교 탄압법」 중에는 니체의 신랄한 기독교 비판이 나온다.  
 
제5조
사제와 한 자리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축출해 버려라. 사제와 식사를 함께 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을 정직한 사회로부터 자신을 파문한 것이다. 사제는 우리의 찬달라다. 그를 추방하고 철저하게 굶겨서 사막으로 내쫓아야만 하다.
 
제6조
‘성스러운’역사를 그것에 마땅한 이름인 저주받은 역사라고 불러야만 한다. 신, 구세주, 구원자, 성자라는 말들을 욕으로 사용하거나 범죄자에 대한 표지로 사용해야 한다.


 

‘자연’이라는 개념이 ‘신’에 대한 대립 개념으로 일단 고안된 후부터는 ‘자연적인 것’이라는 말은 ‘비난할 만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야만 했다.- 저 허구적인 세계는 자연적인 것(현실!)에 대한 증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은 현실적인 것에 대한 깊은 불만의 표현이다.(14절 42쪽)

 

신이란 개념은 이제 사제 선동가들의 손아귀에 놓인 하나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 선동가들은 이제 모든 행복을 일종의 보상으로 해석하고 모든 불행은 신을 불복종한 데 따른 벌, 즉 ‘죄’에 대한 벌로 해석한다. 이것이 바로 ‘원인’과 ‘결과’라는 자연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이른바 ‘도덕적 세계질서’를 내세우는 가장 기만적인 해석 방식이다.”
(25절 62쪽)

 

천국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며, 죽음 후에 오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천국은 죽고 난 후에 가는 것이 아니다. 임종의 시각-시각, 시간, 육체적 삶과 그것의 위기 등-은 그리스도교적 개념이 아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적대시할 것, 대립적 존재가 없어진다. 따라서 죽음이 없어지면, 그것이 우리를 영원에 들게 한다. 천국, 신의 나라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경험이며, 그것은 도처에 있으면서도 아무 데도 없는 것이 된다.(85쪽)

 

니체는 인류 역사상 그리스도인이었던 사람은 오직 예수 한 사람뿐이라고 주장한다. 니체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실천을 강조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입으로는 항상 신앙을 이야기하면서도 항상 본능대로 행동하는 교활한 사람, 복음의 실천을 강조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죄를 짓는 범죄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