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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하루일기

2026 1월 11일 - 어머니를 추모하며

by 하늘밑 2026. 1. 11.

어머니를 추모하며

 
제망매가 祭亡妹歌
 
죽고 사는 길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하고 어찌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는구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다.
 
「제망매가(祭亡妹歌)」는 월명사(月明師)가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누이를 미타찰, 곧 극락정토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도를 닦아 기다리겠다는 말은 남겨진 자가 겪어내야 하는 그리움의 깊이다. 이 향가에서 내가 새롭게 느낀 것은 월명사가 누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 또한 직면한다는 점이다.
 
삶과 죽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는 특정한 계절의 풍경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징후다. 죽음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삶 한복판에 와 있다.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이라는 말은 인생이 결국 한 가지에서 잠시 붙어 있다가 흩어지는 나뭇잎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는 동시에 자기 존재의 유한성을 확인하는 독백이다.
 
죽음은 종교로의 회귀를 부추긴다. 그러나 종교가 약속하는 구원이 있다고 해서, 죽음 앞에 선 삶의 두려움과 허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극락정토는 죽은 자를 위한 희망과 위안이라기보다 인간이 느낄 수밖에 없는 공허감을 어떻게든 보상하려는 말이다.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첫 번째 기일을 맞았다. 추모공원 납골당에서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월명사가 누이의 죽음 앞에서 느꼈을 죽음의 ‘현장성’을 경험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단순한 상실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의 불가피성이 나의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경험이었다.
 
아흔을 넘긴 아버지는 내 곁에 서서 납골 항아리 옆에 놓인 어머니의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계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 죽음이라는 엄숙한 사실 앞에서 인생은 이렇게 무방비해진다. 나는 아버지의 거친 손을 꼭 잡고 한동안 침묵 속에 있었다.
 
가는 곳 모르게 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고 한다. ‘무상(無常)’은 허무를 뜻하는 말일까?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변화다. 삶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죽음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그것이 끝없는 윤회의 일부인지, 창조주를 향한 영생의 시작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죽음이 신비라면 그것은 또 다른 삶의 연장이라는 사실이다. 1300년 전 월명사는 ‘도 닦아 기다리는’ 삶을 선택했다. 지금이라고 뭐 달라졌을까? 영정사진 속 어머니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웃으며 말씀이 없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