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사거리를 지나며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거리의 신호등을 만난다. 밤 11시가 넘으면 신호는 사라지고 주황색 불만 점멸한다. 시간과 에너지 절약을 위해 도입한 야간 신호등 점멸제가 시행되고 있다. 질서가 잠시 물러난 시간이다. 그런데도 자동차와 사람은 멈출 줄 알고, 건널 줄 안다. 규칙이 사라진 자리에 각자의 판단이 들어선다. 무질서해 보이는 상황이 오히려 또 다른 질서를 만들어 낸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 영원히 불변하는 것도 없다. 모든 현상 속에는 대립이 있고, 그 대립은 스스로를 넘어서며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이 변화의 원리를 한자로는 ‘도(道)’라고 부른다. 도에는 억지로 무엇을 하려는 작위가 없다. 도는 저절로 그러한 상태, 곧 ‘자연(自然)’을 따른다.
우주론적으로 자연이란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이전의 세계이기도 하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은 태초의 혼돈(混沌)한 상태다. 혼돈의 세계에는 아름다움과 추함, 옳고 그름의 판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불확실성 속에 있다.
질서는 언제나 옳고, 혼란은 언제나 제거해야 할 대상일까? 혼돈은 늘 불안하여 정리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밤늦은 사거리의 주황색 점멸등처럼, 때로는 질서의 합리성보다 무질서의 불안정성이 더 큰 안정감과 생명력을 선물한다. 카오스(chaos)이론에서는 혼돈의 상태를 오히려 무질서 속에 있는 또 다른 질서라고 말한다.
규율과 법은 언제나 정답을 요구하지만, 세상은 종종 반대편에서 더 큰 진보를 이루어 왔다. 자연 생태계를 보아도 그렇다. 순수한 것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순수함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자연은 약육강식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자연선택이다. 인간의 삶 또한 어떤 목적에 의해 설계되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우연의 연속에 가깝다. 그 우연들이 모여 오히려 더 큰 합목적성을 이룬다.
“혼돈이란 아직 해독되지 않은 질서다”(Chaos is order yet undeciphered)
-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
세상은 공평하지도, 불공평하지도 않다. 공평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 동전을 던지면 앞면이 나올 확률은 체감상 결코 1/2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행위를 영겁의 시간 동안 반복한다면 결국 확률은 반반으로 수렴한다. 짧은 생을 살며 감정에 쉽게 휘발되는 우리는, 얄팍한 지식으로 세상의 이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다만 혼돈과 무질서가 가장 자연스러운 도에 가깝다는 신비를 어렴풋이 엿볼 뿐이다.
그러므로 닥친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신이 만약 그랬다면 인류는 절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 행운도 불운도, 혼란도 질서도 신의 커다란 계획의 일부다. 삶을 전관(全觀)한다는 것은 인생의 뒤로 물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혼돈과 질서가 뒤섞인 한가운데로 용기 있게 걸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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