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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하루일기

2026 1월 10일 - 인체의 신비전과 얼굴

by 하늘밑 2026. 1. 10.

인체의 신비전과 얼굴

 
창경궁 옆에는 한때 국립서울과학관이 있었다. 지금의 국립어린이과학관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체험형 과학관이니 성인이 일부러 찾을 곳은 아니었지만, 2000년대 초반 이곳에서 평일에도 줄을 서야만 들어갈 수 있는 전시가 열렸었다. ‘인체의 신비전’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입장료는 국립기관이 개최한 전시치고 꽤 비쌌다(만원이 넘었던 것 같다). 실제 기증된 시신으로 표본을 만들었다니 비싸도 그럴 만하다고 여겼다. 1·2층으로 꾸며진 전시장에는 피부가 완전히 제거된 인간의 몸이 고깃덩어리처럼 서 있거나, 기괴한 자세로 멈춰 있었다. 자궁속 태아를 드러내고 있는 임산부, 수직으로 또는 수평으로 정교하게 절편을 뜬 인간 등 인간의 신체가 박제된 동물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전시가 가능했던 것은 알고 보니 독일의 한 대학에서 개발한 ‘플라스티네이션’ 기법 덕분이었다. 인체의 수분과 지방을 제거하고 이를 플라스틱과 실리콘으로 대체해 조직의 부패를 막는 기술로, 당시에는 살아 있는 상태에 가깝게 인체를 보존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한 동안 할 말을 잊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충격과 감동이라더니 감동은 사라지고 충격만 남았다. '온가족이 함께 하는 신비한 생명체험'이란 문구가 무슨 귀신의 집 홍보문구 같았다. 신비로 남겨두어야 할 인간의 몸을 너무 쉽게, 너무 노골적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얼마 후 서울에 있는 한 가톡릭성당이 신이 주신 인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한다며 성도들이 단체관람하는 기사를 뉴스에서 봤을 때는 정말 머리가 아찔했다. 이 전시회는 학부모의 교육열이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인간의 신체를 전시품으로 만들고 생명의 존엄을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리지널 전시’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떠돌더니 어느 순간 아무도 찾지 않는 전시회가 되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인체의 얼굴이었다. 겉 표피만 벗겨내어도 누가 누구인지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골격에 따라 윤곽은 다르지만, 우리가 말하는 이목구비의 이상적인 배치나 균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부 한 겹에서 생기는 예쁘다, 못생겼다는 판단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그때 처음 실감했다.
 
최근 연상호 감독의 영화 「얼굴」을 보며 이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은 얼굴을 보여줄 수 없는 아내를 타인의 말만 믿고 추하다고 단죄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몬다. 아내의 평범한 얼굴은 그녀의 선량함과 정의감을 두려워한 자들에 의해 괴물로 왜곡되어 전달된다. 영화는 1970년대 산업화 시기의 한국을 배경으로, 가부장제와 노동착취, 성폭력, 장애인 비하 등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의 삶을 대를 이어 철저하게 파괴하는지 집요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묻는다. 괴물은 과연 누구인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편견은 언제나 타인의 얼굴을 쓰고 나타나지만, 실은 내 안에서 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의 표피는 0.5mm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편견의 두께는 그보다 몇십 배는 두껍다. 인체의 신비전처럼 얼굴의 낯가죽을 강제로 벗겨내야만 비로소 각성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두꺼운 가면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 가면을 벗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얼굴, 연상호 감독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