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아들이 군에서 제대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제대 직후에는 여기저기 인사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더니, 날씨가 추워지자 자기만의 생활리듬으로 돌아갔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은 기본, 태블릿으로 즐기는 온라인 게임과 넷플릭스. 일 없으면 하루 대부분을 자기 방에서 보낸다. 가끔 불러내어 밥도 사주고, 운동도 같이 하고, 교회에도 데려가 보았지만, 이내 그것마저 귀찮아졌는지 가족행사가 아니면 좀처럼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규칙적인 생활과 단단한 몸으로 특등사병을 노리던 건장한 아들의 육체는 어느새 배가 나온 내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아들의 태도가 불량한 것은 아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거절조차 예의 바르다.
- 00야, 내일 아파트 커뮤니티 헬스장에서 같이 가서 운동할까?
- (웃으며) 싫어요~~.”
- 00야, 새해 첫날인데 잠깐 뒷산에 갈까?
- (단호하게 웃으며) 싫어요~~.”
거실에 큰 TV가 있어도 아들은 아늑한 자기 방에서 작은 화면의 유튜브 시청을 즐긴다. 아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잠시라도 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부르는 것이다. 아들에겐 아직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라면 한 끼에 하루를 버틸 수 있는 강한 체력이 남아 있으나 언제까지 버틸지 의문이라 영양의 완만한 공급을 위해 같이 먹을 때만이라도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이려고 애쓴다.
다행히 음식을 해서 부르면 곧잘 나온다. 밥도 푸고 수저도 놓는다. 하지만 마주 앉아 있어도 눈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다. 맛있게 먹고 “잘 먹었습니다” 한마디를 남긴 뒤, 곧장 자기 방으로 직행한다. 아들과 대화를 이어가려면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기 전에 화제를 꺼내는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에 대한 이야기는 아들의 흥미를 끌었다. 그 덕에 20분 가까이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가상화폐, 주식, 중국과 관련한 국제 정세 이야기도 통한다. 아바타3를 보고 전편의 줄거리를 궁금해하며 재미있는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분위기를 바꾸는 질문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 살얼음처럼 냉냉해져 불편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 그런데 00야, 전에 말한 운전면허 말이야. 지금 복학 앞두고 딱 좋은데 어때? 집 앞까지 학원 봉고차가 온다고 하더라.
- 아빠, 자꾸 반복해서 말하면 하고 싶던 마음도 사라져요. 알아서 할게요.
이럴 때면 아비가 또 본분을 잊고 귀한 자식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또 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아들은 꼭 해야 할 일은 결국 해왔다. 다만 시기가 내가 기대한 것보다 많이 늦었을 뿐이었다. 스스로 중요하다고 판단한 일 앞에서는 밤을 새우기도 했다. 대학교 첫 중간고사 준비가 그랬었다.
내가 X세대라면 아들은 분명 MZ세대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순두부찌개를 처음 먹었고, 일본 배낭여행을 위해 돈을 겨우 모아 처음 비행기를 탔다. 반면 아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 손을 잡고 사이판 여행을 다녀왔고 좋다는 학원은 다 다녔다. 축복이라면 축복이다. 나의 세대는 위로는 부모를, 아래로는 자식을 살펴야 하는 ‘끼인 세대’다. 경제적 부담도 감정 노동도 많다. 그에 비하면 아들은 자기 한 몸만 책임지면 되는 복을 타고났다.
그런데도 아들을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세상은 편해졌지만, 아들이 살아갈 세상은 오히려 더 냉혹하다. 자수성가의 서사는 희미해졌고, 대학 졸업을 앞둔 학생을 찾아와 구직의 손을 내밀던 기업의 리쿠루트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 기업은 경력직만 선호하니 긴시간 알바만 전전해야 할지 모른다. 저금리 속에 물가는 계속 오르고, 인공지능은 멀쩡한 사람이 다니던 일자리까지 위협한다. 코로나 이후 여럿이 모여 즐기던 대학 문화는 흩어졌고 각자도생이 일상이 되었다. 아들의 미래는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장밋빛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크다.
아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당사자다. 겉으로 보기엔 답답해 보여도 아들은 나보다 더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군대에서 번 돈으로 용돈을 달라하지 않는 것,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는 것, 가끔 쓰레기 분리수거를 도와주는 것, 뉴스를 챙겨보고 가족 경조사에 같이 가주고 가끔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만 해도 참 고마운 일이다.
아버지인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들을 이해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해’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것이다. 나는 부정하려 해도 이미 꼰대다. 그래서 남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인정’이란 말이 맞겠다. 아, 너는 지금 그렇구나. 지금은 이게 하기 싫구나. 잔소리를 줄이고 대신 공감의 마음을 표현하기로 한다. 이 다짐은 외식 자리에서 아내가 했던 조언과도 닿아 있다.
- 애들이랑 밥 먹을 때 음식 평가나 정치 얘기만 하지 말고, 진짜 마음을 말해봐. 같이 밥 먹어서 좋다거나, 아버지로서 부족했던 걸 인정하면서 뭐를 부탁한다거나 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로서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걸 느낀다. ‘어쩌다 어른’이 된 결과다. 헛똑똑이다. 내가 좋으면 상대도 그러려니 여기는 태도로는 관계가 버텨내지 못한다. 부정하려 해도 나는 이미 어른이 되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든 이제는 그 책임을 외면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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