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토크(Bartók) 음악을 들으며
안도르 폴데스(Andor Foldes, 1913~1992)의 피아노 연주로 벨라 바르토크(Bartók Béla,1881~1945)의 음악을 들었다. 1955년 베를린에서 MONO로 녹음한 음반으로 도이치그라마폰에서 발매했다. 바르토크는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그의 음악에는 헝가리 민요와 무곡의 특색이 짙게 배어 있다. 안도르 폴데스 또한 헝가리 태생이니 바르토크의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베토벤에서 쇼팽, 슈만까지, 주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를 오가며 즐겨 음악을 듣는 나에게 사실 바르토크라는 이름만큼이나 그의 음악이 무척 낯설다. 연주자가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치는 모습은 그나마 퍼포먼스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불협화음에 종잡을 수 없는 박자의 변화까지, 음악을 듣노라면 필요한 것은 감상이 아니라 인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문학동네, 2022)를 읽다가 하루키가 바르토크의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았다. 1960대 녹음된 바르토크의 현악사중주를 두고 한 말이긴 하지만 바르토크의 음악을 들으려면 어지간히 내공이 쌓인 골수 클래식 팬이 아닌 이상 한 발짝 물러서게 되고 나름 기력이 필요하다는 말에 대작가 또한 나처럼 바르토크 음악을 듣는 것이 쉽지 않았구나 싶어 반가웠다. 그리고 “그의 음악 안으로 들어서면 ‘맞아 그렇지’하며 순순히 피부로 공감할 수 있는, 피와 눈물이 흐르는 음악 세계가 그 너머에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표현한 대목에서는 공감이 가면서도 고개가 갸웃해졌다. 모호한 조성과 전방위적인 불협화음이 특징이라고 하는 바르토크의 음악에서 하루키는 뭘 느껴서 대체 그렇게 말한 것일까? 하루키를 만난다면 꼭 한번 묻고 싶어졌다.
안도르 폴데스 음반의 첫 번째 곡은 ‘미크로코스모스’로 바르토크가 둘째 아들 페테르를 위한 교육용 피아노 교재로 작곡한 153개의 소곡 모음집(총 6권) 중 18개의 연주곡이다. 음반에는 후반부 122번에서 153번 사이의 곡을 뽑았기 때문에 곡의 난이도가 매우 높다. 짧은 것은 40초가 안되고 길어봐야 2분을 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세계가 밀도 높게 압축되어 있어서 모든 신비를 담았으니 ‘미크로코스모스’, 즉 소우주라는 제목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18곡을 내리 듣는 동안 묘한 긴장감과 역동성이 느껴졌다. 바흐, 슈만, 쿠프랭에 대한 오마주, 동유럽(불가리아나 루마니아까지 폭넓게) 민속 음악에서 얻은 영감에 스케르초와 같은 춤곡, 발구르기나 포크댄스의 격동적인 박자, 반음계 인벤션 같은 피아노의 초호화 기법이 화려하다. 아버지의 이 종합선물세트 같은 교본으로 아들 페테르가 실제 연습을 했을까 싶다. 아마 도망가지 않았을까?
음반에는 조성진이 최근 연주해서 유명해진 ‘Out of Doors, Sz.81’(야외에서)라는 곡도 있다. 총 5곡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 연주시간이 10분을 조금 넘는다. 제1곡[With Drums and Pipes. Pesante]에선 드럼과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선율이 대비를 이루고, 제2곡[Barcarolla. Andante]은 뱃놀이로 오른손의 불안정한 움직임 위로 왼손의 아르페지오 반주가 여유롭고 우아하게 흐른다. 제3곡[Musettes. Moderato]은 백파이프를 묘사한 곡으로 급격한 템포 변화와 도약이 두드러진다. 제4곡[The Night's music. Lento]은 밤풍경을 묘사한 곡으로 왼손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음형이 반복된다. 다섯 곡 중 가장 길어 4분을 넘긴다. 제5곡[The Chase. Presto]은 사냥을 뜻하는 곡으로 거칠고 투박한 타악기적 터치가 쉼 없이 몰아친다.
바르토크의 음악은 쇤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나에게는 생경함을 넘어서 도전이다. 그럼에도 20세기 전환기에 이토록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냈다는 사실 앞에서는 감탄을 멈출 수 없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기에는, 그 음악이 품은 에너지와 집요함이 너무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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