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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하루일기

2026 1월 2일 - 희망과 절망사이에서

by 하늘밑 2026. 1. 2.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에피메테우스는 헤파이스토스가 빚은 여인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와 결혼한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결혼 선물로 상자 하나를 건네며 어떤 일이 있어도 열지 말라고 당부한다. 에피메테우스는 그 상자를 집 한구석에 숨겨 둔다. 그러나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이 없는 사이 상자를 연다. 그 순간 증오와 질투, 질병과 가난, 고통과 불행 같은 세상의 모든 재앙이 상자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황급히 뚜껑을 닫는 바람에 마지막 하나, ‘희망’만이 상자 안에 남는다.

판도라 상자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 신화를 이렇게 해석해 왔다. 희망이 남아 있었기에 인간은 끝내 좌절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정말 그럴까. 상자 밖으로 나오지 못한 희망은,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인간은 희망 때문에 버틴다기보다, 희망 때문에 좌절한다. 희망이 없다면 좌절도 없다. 기대가 없으면 상처도 없다. 그렇다면 고통을 약속하는 희망은 과연 선물인가.

희망은 인간을 만족하지 못하게 하고, 포기하지 못하게 하며, 끝없는 질주로 내몬다. 상자 속에 남겨진 희망은 증오나 질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희망이 참으로 선한 것이라면, 왜 다른 재앙들과 함께 봉인되어 있어야 했겠는가.

희망과 절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전제한다. 희망하기 때문에 고통에 이르고, 절망이 깊어질수록 희망은 더 강렬해진다. 인간은 희망을 품는 존재가 아니라, 절망을 통과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경계해야 할 것은 절망이 아니라 가짜 희망이다.

가짜 희망은 절망으로 내려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충분히 절망하지 못하게 만들어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는다. 값싼 위로와 옅은 감상으로 포장된 수많은 이미지와 문장들은 희망을 미화하며, 그 희망에 닿지 못한 우리를 조용히 고문한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때로 위로가 아니라 폭력이 된다.

진짜 희망은 고통의 심연을 통과할 때 비로소 주어진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자리와 마주한다. 그것은 두려움이자 동시에 희열이다. 예수가 광야에서 받았던 시험이 그러했고, 오디세우스가 귀환의 길에서 겪어야 했던 방황이 그러했다. 그런 의미에서 희망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건넨 불과 닮아 있다. 온기를 줄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도 있는 불이다.

그러므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희망과 절망을 품어야 하는가. 희망을 붙들 것이 아니라, 다룰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절망을 피할 것이 아니라, 끝까지 견뎌내야 하지 않겠는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생각하게 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희망이 아니라, 희망을 감당할 수 있는 절제와 깊이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의 그림 《판도라》(Pandora, 1896년)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