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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사소한 독서

김초엽, 『양면의 조개껍데기』

by 하늘밑 2025. 12. 19.

김초엽, 『양면의 조개껍데기』

 

라임과 레몬


김초엽의 소설은 SF라는 장르적 외피를 거의 의식하지 않게 만들 만큼 문장이 매끄럽다. 비현실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상상의 세계를 정교하게 구축한 뒤 그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작가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질 만큼 우아하고 신비로운 세상을 능숙하게 만들고, 그 속을 종횡무진 누비며 참신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이어 간다.
 
사실 지구를 벗어난 존재들에게 시간과 공간은 무의미하다. 더구나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미지의 대상에 대한 이해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들은 언제나 ‘영원한 타자’로 남는다. 그런데 김초엽은 바로 그 불가능성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한다. 머나먼 행성의 낯선 외계인이 겪는 고민은 어느새 지구에 사는 나의 고민으로 전이된다. 그렇다고 현실을 교화하기 위한 도구로 SF를 교묘하게 활용하지도 않는다. 현실과의 연결이 개연성을 잃지 않을 정도로 느슨함을 유지하며 호기심과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독자는 과학적 해석의 부담에서 벗어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김초엽의 세 번째 단편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의 표제작 「양면의 조개껍데기」가 그렇다. 소설은 ‘라임’과 ‘레몬’이라는 두 개의 자아를 한 몸에 지닌 외계 종족 ‘셀븐인’, 샐리의 이야기다. 현실의 인간세계라면 이 존재의 탄생부터 장황한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SF라는 가상 세계는 그러한 전제를 관대하게 허용한다. 마치 지구인들의 외모와 사고방식이 얼마나 고루한지 비웃기라도 하듯.
 
라임이 조개의 부드러운 안쪽 껍데기라면, 레몬은 거칠고 단단한 바깥 껍데기에 가깝다. 특히 레몬은 자신의 여성 신체에 성별 불일치감을 느끼며 라임과 지속적으로 충돌한다.
 
“제발 그 멍청해 보이는 원피스는 입지 마. 내가 그 천 쪼가리를 입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니까.”
 
“멍청하게 굴지 좀 말라고. 특히 여자애처럼 행동하는 거.”
 
레몬의 말은 단순한 독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혐오와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라임과 레몬은 낮과 밤을 나누어 몸을 사용하며 공존하지만, 그 대립은 결국 피할 수 없다. 라임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뇌관 교류체를 끊는 분리 시술을 결심한다.
 
“널 타자로서 사랑하고 싶어서 평생 노력해 봤지만 잘 안 됐어… 나와는 너무 다른 존재인 너를 이렇게 가까이에 둘 자신이 없어.”
 
이 고백은 타자를 이해하려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묻는다. 라임이 말하는 ‘거리’는 배제라기보다 최소한의 공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루피너스 행성의 깊은 바다에서 거대한 외계 생물을 만나는 사건 이후, 레몬의 자아는 무의식 속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레몬이 사라진 세계에서 라임은 레몬의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게 된다. 그제야 라임은 레몬이 왜 그렇게 까칠했는지, 왜 깊은 바다를 사랑했는지를 이해한다.
 
레몬에게 심연의 바다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곳… 내가 어떤 존재인지 묻지 않는 곳.”이었다. 억압과 규정이 없고, 존재의 차이가 혐오로 이어지지 않는 곳. 그래서 레몬에게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었다. 결국 라임은 레몬을 받아들인다. 조개에게 부드러운 속살이 있다면 거친 껍데기도 있다. 바닷속에서 거친 물살을 이겨 내려면 겉은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조개의 양면은 차별이 필요없이 공존한다. 때로 다른 자아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거친 언행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자괴감에 빠뜨릴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감정 역시 나의 일부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인색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그 누구와도 온전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
 
“처음으로 온전히 개방한 내 자아 안쪽으로 레몬의 세계가 파고든다.”
 
그 세계는 슬픔과 외로움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반짝이는 것들도 있다. 그 반짝임이 우리에게 건너오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불가능한 꿈을, 자기 자신과의 화해라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되돌려 놓으면서.

『양면의 조개껍데기』 깁초엽 래빗홀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