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느리게 가는 마음』
산책로를 맨발로 걷는 사람을 구경했다. 산책로를 거꾸로 걷는 사람도 구경했다. 아주 느리게 걷는 노부부도 구경했다. 노부부의 발걸음에 맞춰 숨을 쉬어보니 천천히 흘러가는 세상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지금 재생 속도는 0.25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부장님은 유튜브 영상 속도를 1.5배로 설정하고 보았다. 주로 주식에 관한 영상을 보았는데, 말이 빨라지면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집중을 하게 된다고 했다. 스키를 탄다는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싱그럽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저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갑자기 등이 시려왔다. 봄볕은 따뜻했고 나무마다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문득 내가 지금 추운 게 아니라 외로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의 외로움이 내게로 옮겨올까 봐 나는 얼른 엄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입바람을 불었다. 그러자 다시 세상이 보통의 속도로 재생되었다. 곧이어 소나기가 쏟아졌다. 세상이 1.5배의 속도로 재생되었다. 「보통의 속도」중에서
느리게 걷고, 느리게 보고, 느리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하루. 그 하루를 그리기 위해 나는 느리게 걷고 느리게 보고 느리게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풍경은 저기에 있습니다. 나는 ‘저기 있는 풍경’이 인물의 ‘여기 있는 마음’과 합쳐지는 순간을 느리게 기다렸습니다. 느리게 기다리다보니 느리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속도가 나를 어떻게 바꿀지 조금 궁금해집니다. 또, 이 속도가 독자들의 마음에 어떻게 도착할지도 몹시 궁금합니다. 「작가의 말」에서
※ 소설이 벽에 막혔을 때 윤성희 작가는 앞으로 쓰는 소설마다 웃는 장면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또 막막해졌을 때 이번에는 소설마다 ‘괜찮다’란 말을 하는 인물을 한명씩 등장시켰답니다. 이번 소설집에는 인물들에게 작은 파티를 해주고 싶어서 자주 생일을 넣어다는 작가. 소설은 극적이지 않으며 경쾌하고 담박합니다. 순간순간 인물의 심리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기억과 생각, 사람과 사물의 경계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독백과 대화가 인물의 서사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쉽게 읽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장이 따뜻합니다. 에세이 같은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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