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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사소한 독서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by 하늘밑 2025. 9. 25.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 추락하거나 비상하거나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거다! 은혜와 미덕과 행복의 삶을 살아야지! 그것은 현실이었다. 잠이 깨면 사라지고 말 꿈이 아니었다. 지난 일들은 지나갔다. Corpus Domini nostri ! 성합이 그의 앞에 이르렀다."

 

 
1.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대하여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을 오랜만에 진지하게 읽어봤다. 좀 지루한 감이 있었으나 1장을 넘어서니 수월했다. 다시 5장에서 책장이 더디 넘겨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일랜드 더블린에 가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고, 더블린의 대표 작가 제임스 조이스 정도는 읽고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작용했다. 그가 자주 갔다는 탬플바에 들러 기네스 한 잔 기울일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 이상욱 옮김 민음사 2004

 

제임스 조이스는 보통 모더니즘의 선두주자로 불린다. 모더니즘은 20세기 초반 발생한 예술적 경향을 총제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다. 프랑스에서 흔히 말하는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예술)도 모더니즘 계열이고 1차 세계대전 이후 범람한 상징주의, 야수파, 초현실주의, 입체파도 넓게 보면 다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제임스 조이스는 30대 초반, 1914년 무렵에 이른바 더블린 3부작인『더블린 사람들』,『젊은 예술가의 초상』,『율리시스』를 발표했다. 1906년에 이미 완성했던 문제소설 『더블린 사람들』은 논란 끝에 1914년에 이르러서야 출간할 수 있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1916년 출간됐다. 1914년부터 집필을 시작한 『율리시스』는 음란하다는 이유 등으로 사회적 논란과 연재 중단 등의 시련을 겪다 1921년 완성됐다.
 

***1914년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해였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이 본격 등장하던 시기였으며, 아일랜드 정부법(Government of Ireland Act·1914)을 영국 의회가 승인한 해다. 이해 영국 의회는 세 번 만에 아일랜드 자치법을 통과시켰으나 이 또한 그해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으로 효력이 중지됐다. 아일랜드는 1937년이 돼서야 신헌법을 제정하고 ‘에이레(Éire, 아일랜드 공화국)’란 이름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조이스의 문학은 이후 1920년대 펼쳐질 다양한 모더니즘 문학의 첫 출발점이라고 평가받는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문학잡지 『에고이스트』의 편집을 맡고 있던, 미국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의 도움으로 연재될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Stephen Dedalus)라는 청년의 성장 과정과 내면세계의 변화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사실 술술 읽기 쉽지 않은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소설이 절정과 위기와 같은 소설 전개의 흔한 양식적 특성이 없고, 대화의 내용이 종교와 철학, 신화를 넘나들며 매우 상징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과 관련된 큰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보다는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외부의 큰 사건보다는 인물의 내면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시킨다. 서술 시점 역시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각 장면과 이야기에 따라 다양한 시점으로 기술된다.
 
이런 소설 쓰기 작법을 흔히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한다. 인간의 의식이 툭~ 툭~ 끊어져 있지 않고 강물의 흐름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면 작가는 줄거리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늘날에는 소설은 물론 영화에서도 흔하게 활용하는 작법이지만 조이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그야말로 모던한, 새로운 시도였을 것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다 보면 어떤 특정한 사건보다는 주인공과 주변인물이 나누는 대화와 내면 감정의 서술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소설 4장 마지막에서 개울 가운데 혼자 서서 가만히 바다를 응시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환희가 폭발하는 장면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듯 의식 속의 깨달음을 자유롭게 펼쳐낸다. ' 에피파니(epiphany)'의 신적인 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 이럴 수가! 독신(瀆神)적인 환희의 폭발 속에서 스티븐의 영혼은 절규했다. 그는 갑자기 그녀에게 몸을 돌리고 둑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의 뺨이 화끈거리고 몸은 불덩이 같았으며 사지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그는 멀리 모래밭을 활보하면서 바다를 향해 미친 듯이 노래했고, 그동안 그를 향해 소리치고 있던 삶이 임박해지자 그것을 맞이하기 위해 외쳤다. 그녀의 이미지는 영원히 그이 영혼 속으로 옮겨갔고, 그가 거룩한 침묵 속에서 느끼던 황홀경을 깨는 언어는 없었다. 그녀의 눈이 그를 불렀고 그의 영혼이 그 부름을 받고 뛰었다. 살며 , 과오를 범하며, 타락해 보고, 승리하고, 삶에서 삶을 재창조하는 거다!"
 
 
2. ‘미궁(迷宮, Labyrinth)’ 탈출, 추락하거나 비상하거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는 작가의 분신과도 같다. 소설의 끝에서 스티븐은 가족과 종교, 국가라는 세가지 얽매임을 끊고 예술가로서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자의적 망명이자  ‘자기유배(self-exile)’의 길을 떠난다. 조이스는 실제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의학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났다. 조이스가 태어나서 약 20년의 이야기가 소설로 쓰였다. 스티븐은 예술가적 신념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이나 예술 양식을 빌려 내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무기인 침묵, 유배 및 간계를 이용하도록 하겠어."
 

The Fall of Icarus, 17th century, Musée Antoine Vivenel

조이스는 스티븐을 얽어매는 가정과, 조국, 신앙을 그리스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미궁의 모티프를 활용해 표현했다. 미궁은 쉽게 들어갈 수 있지만 계속해서 출구를 찾아 헤매야 하는 곳이다. 잉글랜드의 힘에 복종하며 오랜 기간 식민지로 살아가야 했던 아일랜드(Ireland)는 스티븐에게 미궁과도 같은 곳이었다. 스티븐이 정의이자 질서로 믿고 따르던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권위가 점차 무너지자 그는 심리적 혼란을 겪으며 자신의 가정이 미궁임을 인식한다. 가톨릭과 신교도들의 종교적 갈등, 지도자의 도덕적 몰락은 그의 조국 또한 깊은 미궁 속에 빠져있음을 의미한다. 스티븐의 인생은 커다랗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미궁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침내 길을 잃고 방황하던 그는 비상과 도약을 꿈꾸었다.
 
“다가오라 삶이여! 나는 체험의 현실을 몇백만 번이고 부닥쳐보기 위해, 그리고 내 영혼의 대장간 속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내 민족의 양심을 벼리어내기 위해 떠난다. 4월 27일 – 그 옛날의 아버지여, 그 옛날의 장인(匠人)이여,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 주소서.”
 
소설의 끝에서 스티븐이 도움을 청하는 대상은 누구일까? ‘옛날의 장인(匠人)’이란 그리스 신화 속 ‘다이달로스(Daedalus)’다. ‘디덜러스’는 ‘다이달로스’의 영국식 발음이다. 스티븐의 절대적 의지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과 동일시하는 ‘다이달로스’다. (주인공의 이름을 로마의 고대시인인 오비디우스 데덜러스에서 따온 것으로 보기도 함) 미궁은 크레타(Crete)왕국 미노스(Minos) 왕의 명령을 받은 다이달로스에 의해 지어졌다. 미노스는 아내의 수치스러운 간통으로 태어난 자식, 미노타우로스를 가둬둘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을 짓도록 요구했다. 그런데 다이달로스는 이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누설하게 되고 그 죄로 스스로 만든 미궁에 아들 ‘아키로스’와 함께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다이달로스는 깃털로 날개를 만들고, 밀랍으로 자신과 아들의 어깨에 그것을 달아 탈출을 시도한다. 이카로스는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주의를 잊고 너무 높이 올라갔다가, 태양에 밀랍이 녹아 그만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아들의 사체를 건져 장례를 치른 다이달로스는 시칠리아를 향해 떠난다.
 
소설의 4장 끝에는 스티븐이 사제가 될 것인지 아니면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를 두고 마지막 고민을 하다가 해변가를 거닐며 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친구들은 스티븐을 향해 야유하고 놀리며 장난스레 외친다.
 
"그는 그들로부터 떨어져 침묵을 지키면서 그 자신도 스스로의 육체적 신비에 비해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스테파노스 데달로스! 부스 스테파누메노스! 부스 스테파네포로스!」그들의 양유가 그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고 이제는 오히려 그의 온화하고 도도한 주체 의식을 부추겨 주었다. 과거와는 달리, 자기의 기이한 이름도 이제는 하나의 예언으로 여겨졌다."
 
‘스테파노스 데달로스!’에서 ‘스테파노스’는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이며  ‘화환’이란 뜻으로 스티븐의 그리스식 이름이다. ‘부스 스테파누메노스!’는 '왕관을 쓴 황소'로 승리자를 의미하며, 스티븐의 우상 토마스 아퀴나스가 학창 시절 말이 너무 없어서 ‘벙어리 황소’라고 불린 것에서 따온 이름이기도 하다.  ‘부스 스테파네포로스!’는  ‘희생을 위해 화환을 쓴 황소’, 즉 순결한 희생제물이다. 황소 이미지는 미노스 왕의 자식이 황소 머리를 한 것뿐만 아니라 소설 1장에서 암소 한 마리가 스티븐을 상징하는 ‘턱쿠아기’를 만나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순교'와 '승리자', '희생'의 이미지가 친구들의 입을 통해 예언자의 환희처럼 스티븐의 각성을 재촉한다.  
 
스티븐은 문득 번개처럼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다. 자신과 미궁을 설계한 ‘다이달로스’가 같은 이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다이달로스처럼 날개를 달고 미궁을 탈출해야 한다. 예수처럼 희생하더라도 구원과 승리로 나아가야 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을 붙들고 있는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아나야 한다. 
 
소설 속에서 스티븐은 초월과 비상을 통해 완전한 성장을 이루고자 한다. 그가 품고 있던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게 된다. 비록 그의 비상이 완전하지 못하고 이카로스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더라도 그 죽음조차 삶과 예술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이었다. 추락할지라도 죽을지라도 승리를 향해 미궁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재창조해야 한다.  조이스의 문학이 기독교적이고 그리스적인 이유는 이런 희생과 부활의 이미지가 그의 소설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조이스는 미궁을 빠져나오는 다이달로스지만 자기의 삶이 이카루스가 될수도, 예수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다이달로스와 스테판은 이카로스와 예수의 광휘를 따라 확장한다. 그 광휘는 조이스의 미적인식이자 예술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조이스의 인생은 이후 어땠을까? 그는 스티븐처럼 더블린을 벗어나 유럽으로 자유롭게 비상하며 예술을 통해 빼앗긴 아일랜드의 언어와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21살, 파리로 떠난 후 웨일스와 런던에 잠시 온 것 말고는 고향에서 버림받은 예수처럼 더블린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연보에 의하면 1912년이 그가 더블린을 찾은 마지막 해이다. ‘자기유배’란 말을 실천하듯 죽기까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를 떠돌다가 1941년, 취리히에 묻혔다. 조이스가 고향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는 건 분명하지만, 더블린 3부작을 쓰고도 자신은 정작 더블린의 이방인이었던 것은 조이스 인생에 있어서 아이러니다.

 

James Joyce Statue, Dub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