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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사소한 독서

양귀자, 『모순』

by 하늘밑 2025. 10. 31.

삶이라는 모순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겹겹이 싸인 눈꺼풀들 속 익명의 잠이고 싶어라

- 릴케의 묘비명 중에서

 

양귀자의 『모순』을 읽었다. 오래전 『원미동 사람들』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은  공지영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함께 읽었는데, 두 작품 모두 여성작가 특유의 신랄하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여성을 독립적 주체로 그려낸 문제작이었다.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그 시절 사회를 휩쓸던 페미니즘의 흔적은 희미해졌고, 내 기억도 바래 있었다. 그런 즈음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이 양귀자의 『모순』이었다. 게다가 유튜버들의 추천과 젊은 MZ들의 입소문으로 역주행 중이라니 읽어보고 싶었다.  

『모순』, 양귀자 장편소설, 쓰다 2025


소설은 도서출판 ‘쓰다’에서 양귀자 소설의 판권을 사들여 펴낸 개정판이었다. 손에 아담하게 잡히는 하드커버의 단정한 질감이 모던하게 느껴졌다. 책장을 넘기다 “이름, 안진진. 그렇다. 나는 진진이다.”라는 문장에서 읽었던 것 같다는 오래된 기시감이 불현듯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읽는 내내 ‘양귀자는 역시 양귀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문장은 언제나 생생한 장면으로 떠오른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내 이름은 김삼순』처럼 등장하는 주인공은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감정의 진폭이 크며 무엇보다 캐릭터가 살아 있다. 치밀한 구성, 역동적이면서도 거침없는 문체, 주인공의 선택에 대한 호기심이 책을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하게 한다. 작품의 주제의식은 책의 끝부분 「작가노트」에서 잘 드러난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 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 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1998「작가노트」중에서

 
 
소설은 딸의 시선으로 어머니와 이모라는 두 여성의 대조된 삶을 보여준다. 만우절에 태어나 같은 날 결혼한 일란성쌍둥이 어머니와 이모. 한 사람은 폭력과 가난, 남편의 그늘에 눌려 살고, 다른 한 사람은 풍요 속의 공허에 갇혀 자멸한다. 두 자매는 남성 중심 사회 안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타협하며 자기기만적인 생존전략을 펼친다. 안진진과 안진모 남매와 사촌 주리와 주혁 역시 같은 나이로 설정되어 또 다른 ‘모순의 대칭’을 이룬다. 두 가족은 평행선을 달리며 대립하고, 안진진은 그 간극을 메우려는 유일한 인물로서 불안과 타협 사이에서 방황한다. 결국 그녀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일상을 탈출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무덤 속의 평온’을 예감케 하는 불완전한 선택이었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98년은 IMF 경제위기 직후였다. 신자유주의의 충격으로 사회 전반의 가치체계가 흔들리던 시기였다. 가부장제의 균열과 함께 여성의 자각이 사회 전면으로 부상했고,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이 맞물리며 단일한 서사사나 이성의 절대성을 부정하기에 이르렇고 삶의 정체성에 균열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모순』은 바로 그 시대적 긴장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즉 90년대 신자유주의사회에서 여성이 갖출 수 있는 생존전략으로서의 속물성이 극단적인 가족사와 양가적 연애사를 거치며 그 갈등의 전모가 전면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설의 결말은 제목처럼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행방불명이었다가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는 중풍과 치매에 걸려있었고 어머니는 남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기위로를 하며 퇴색한 일상을 이어간다. 이모는 부유했지만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지리멸렬한 삶을 자책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안진진은 결혼상대로 김장우, 나영규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다 몽상보다는 익숙한 현실, 나영규를 택했다. 몽상과 낭만은 아름다워 보일 뿐, 현실적 불안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경제적 궁핍함과 이모의 자살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 그 길은 불안보다 평안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무덤 속 같은 평온’을 예견하는 불길한 전조였으며 여전히 모순의 한가운데 있었다.

 

"인간에게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내가 결혼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제발, 부탁이니, 누구도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기 좋은 말들로 나를 설득할 생각도 하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여자 나이 스물다섯에 할 수 있는 결단이 꼭 결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처럼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 봐야 죽을 수도 있는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작가는 이 작품을 용기를 잃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 위해 썼다고 밝혔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면 깨닫게 된다. 진정한 위로란, 실수가 반복되더라도 결국 삶을 스스로 살아내야 한다는 자각뿐이라는 사실을.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란 작가의 문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 존재의 씁쓸한 모순을 정면으로 드러낸 문장임에 틀림없다. 작가는 모순 속에서 삶의 진실을 끌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 모순 속을 걸으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