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자다. 예술을 보여주고 예술가는 숨기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1854-1900)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잘생기고 순수한 청년 도리언 그레이는 화가 바질 홀워드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늙지 않고 영원히 젊게 살고 싶다고 소망한다. 놀랍게도 그 소망은 이루어지고, 도리언의 외모는 변하지 않는 대신 초상화가 그의 타락과 죄를 대신 떠안아 흉측하게 변해 간다. 쾌락주의 철학을 신봉하는 헨리 워튼 경의 영향을 받아 도리언은 쾌락과 방탕한 삶에 빠지며 주변 사람들까지 파멸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정작 그의 얼굴은 늘 젊고 아름다워 사람들은 그의 어두운 본모습을 알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 도리언은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에 시달리다 결국 초상화를 파괴하려 한다. 그러나 칼에 찔린 것은 자기 자신이었고, 도리언은 늙고 추악하게 변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방 안에는 다시 젊고 아름다운 초상화만 남는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1890년 7월, 『월간 리핀콧(Lippincott's Monthly Magazine)』에 100페이지 분량의 중편소설로 첫 출판되었다. 소설이 영국이 아닌 미국에서 출판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발표 직후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에 대한 스캔들이 영국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데카당이라는 병적인 문학사조에 뿌리를 둔 이야기로-작품 전반에 부패한 도덕과 영혼에서 풍기는 악취가 가득하므로 아주 유독하다.-앳되고 아름답고 황금 같은 청춘의 정신과 신체가 타락해 가는 과정을 흐뭇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끔찍하면서도 매혹적인 작품이 될 수도 있었으나 계집애 같은 시시함, 계획적인 위선, 과장된 냉소, 천박한 신비주의, 건방진 궤변, 다채로운 지속함이 남긴 오염의 흔적은 물론, 오스카 와일드의 정교한 워더 스트리트 유미주의와 주제넘은 싸구려 학식 자랑까지 만연하다.” 『데일리 크로니클』리뷰

평론가들은 도리언 그레이를 부도덕하고 갖가지 사치와 예술적 탐닉을 추종하는 방종한 인간이라고 혹평했고 특히 세 명의 남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구조 속에 ‘동성애적 암시’가 가득하다고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비평을 넘어선 냉혹한 비난은 오스카 와일드라는 희대의 천재 작가, 사교계의 핵인싸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편지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질은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고, 헨리는 세상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며, 도리언은 내가 되고 싶은 존재이다.”
오스카의 고백대로라면 바질, 헨리, 도리언은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소설속 세 인물은 모두 오스카 와일드와 닮아있다.
바질은 도덕과 예술의 경계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에 평생을 헌신하였다. 그에게 예술이 가진 모든 경이로움과 매력의 원천은 도리언의 외모였다. 그는 도리언의 초상을 그리는 것에 자신의 영혼을 쏟아부었다.
“도리언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위해서 어떤 새로운 학파를, 낭만적인 영혼이 가진 열정과 그리스적 정신이 보여주는 완벽함을 모두 포괄하는 학파를 수립했어. 영혼과 육체의 조화를 이룬 거야. 정말 대단하지!” p.28
헨리는 오만하고 보수적이고 선동적이며 냉소적인 일면이 있지만 사교적이고 박식하고 호쾌하여 함께 대화를 나누면 금방 영감이 치솟을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도리언을 선동하는 장면은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의 말처럼 달콤하다.
“아직 젊을 때 젊음의 가치를 깨닫도록 해요. 지루한 이야기를 듣느라, 망가질 수밖에 없는 것을 개선하려고 애쓰느라 인생의 황금기를 낭비하지 말아요. 삶을 무지한 자들에게, 통속적인 사람들에게, 상스러운 사람들에게 바치는 것, 우리 시대가 목표이자 이상으로 설정한 그릇된 행위도 결국 낭비입니다. 살아요! 그레이 씨 안에 있는 경이로운 삶을 살아요! 어떤 것도 놓치지 말아요. 항상 새로운 감각을 찾아내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요. 새로운 쾌락주의! 그게 바로 우리 시대가 원하는 겁니다. 당신은 쾌락주의가 인간으로 현현한 결과일지도 모르겠군요. 당신의 매력으로는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잠시나마 세상은 당신 것이에요.” p.45
도리언 그레이는 잘생긴 외모에 온갖 쾌락을 탐미하다 파국을 맞이하는 인물이다. 그는 경솔하고 집요하고 부도덕했기에 그의 주변에는 죽음이 넘쳐났다. 재능있는 배우이자 가수인 시빌은 도리언을 사랑하다 연기를 망치고 독약을 마셨다. 그의 초상화를 그려준 바질은 자신의 그림이 흉악하게 변해있는 것을 보고 경악하다가 도리언이 휘두른 칼에 처참히 살해되었다. 도리언의 부탁으로 바질의 시신을 처리한 화학자 앨런은 죄책감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모두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도리언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지키고 싶었던 것은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젊음'이었다.
“정말 슬픈 일이야!” 도리언 그레이가 여전히 자신의 초상화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정말 슬픈 일이에요! 나는 나이 들어 끔찍하고 추해질 테니까요. 하지만 이 초상화는 영원히 젊음을 잃지 않겠지요. 이 6월의 어느 날에서 단 하루도 더 늙지 않을 거예요……. 서로 반대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영원히 젊음을 잃지 않는다면, 그 대신 이 초상화가 나이 들어 끔찍하고 추해진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난 뭐든 바칠 거예요! 그래, 뭐든 바치지 못할 게 없어요! p.50
오스카 와일드의 실제 삶은 어땠을까? 오스카는 1891년 앨프리드 더글러스라는 젊은 청년을 만나 동성애에 빠졌다. 오스카가 30대 말이었다면 앨프리드는 갓 스무 살을 넘긴 금발의 청년이었다. 앨프리드는 소설 속 도리언 그레이와 같이 당시 매우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였고 성격까지 닮아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사치가 심했다. 오스카는 바질이 도리언에게 한 것처럼 앨프리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응석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바질이 도리언의 칼에 최후를 맞이한 것처럼, 오스카도 앨프레드와의 동성애 관계가 폭로되면서 비극적인 파국을 맞이하였다. 앨프리드와 얽힌 동성애 사건으로 보수적인 영국사회에서 오스카는 빅토리아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에서 가장 경멸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가 쓴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의 죄목을 입증하는 법정 증거자료로 제출되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가 스스로 유죄를 시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사실 오스카는 대중의 비평을 의식한 듯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초판본을 수정하여 1891년, 새롭게 단행본을 펴냈었다. 남녀 간의 부도덕한 관계가 될법한 500 단어 가량을 잘라냈고, 자신의 예술을 위한 변증을 간략하게 서술한 서문을 추가했으며, 초기 이야기를 6개의 장으로 확장했다. 또한 죽은 시빌 베인의 남동생 제임스 베인의 죽음을 새롭게 등장시켰다. 그럼에도 소설이 논란이 되었던 것은 주인공 ‘도리언’이라는 이름이 동성애가 자유로웠던 그리스 ‘도리스 지방’에서 유래한 점. 소설에 나오는 미켈란젤로, 몽테뉴, 셰익스피어 등은 뛰어난 예술가이고 학자였지만 모두 동성애에 관한 이슈가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 도리언이 즐겨 찾던 휴양지 알제가 당시 영국 상류층 게이들의 휴식처였다는 점 외에 바질과 헨리의 도리안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 그들 사이에 이성에서나 느낄 수 있는 야릇한 성적 긴장감이 동성애를 함의한다고 의심하기게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오스카는 동성애 범죄로 유죄가 확정되어 법정 최고형인 ‘강제노역 2년’을 선고받았고 출소한지 3년 만에 쓸쓸히 사망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닮고 싶었고, 헨리와 바질을 순식간에 사로잡은 도리언 그레이의 아름다은 외모는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과연 그의 외모는 굉장했다. 섬세한 곡선의 붉은 입술, 진솔한 푸른색 눈, 곱슬곱슬한 금발 머리, 얼굴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즉시 그를 신뢰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젊음의 솔직함과 열정적인 순수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세상의 티끌이 묻지 않은 깨끗한 분위기가 풍겼다. 바질 홀워드가 숭배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는 숭배받기 위해 창조된 존재였다.” p.36
도리언은 오늘날로 말하면 순수한 미소년, 아이돌급 ‘얼굴깡패’임에 틀림없다. 최근 20~30대 사이에 오직 외모로 참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외모 승인제 파티’가 유행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이성을 만날 때 흔히 중요하게 여겨졌던 직업이나 연봉, 학벌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한달 신청자가 3,000명을 넘는다고 하니 소설에서 한 젊은이의 외모에 집착했던 천년 전 빅토리아 시대를 이상하게 볼 일은 아니다. 외모에서 풍기는 강한 호감을 매력의 한 요소로 무시할 수 없는 세상임에는 틀림없지만 경험해 본 사람이면 모두 알듯 외모가 상대방의 진실함과 영혼의 맑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자신의 초상화에 잔인한 기운이 담긴 주름이 입가에 번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목격한다. 두려움과 공포에 떠는 대신 초상화를 다락방에 숨겼다. 도리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영원한 젊음, 묘하고 은밀한 쾌락, 거친 즐거움과 열정을 모두 누리겠다고 다짐했다.
도리언이 자신의 초상화를 파괴하려는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도리언 그레이가 초상화 속 자신과 거래했던 것은 그의 양심이었다. 만약에 양심이 없다면 두려움도 죄책감도 없을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데일리 크로니클』의 편집자에게 보낸 글에 그 해답이 있어 보인다.
“도리언 그레이는 차갑고 계산적이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성격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굉장히 충동적이고, 말도 안 될 만큼 낭만적이며, 한평생 지나친 양심 탓에 고통받고 있지요. 양심은 그가 느끼는 즐거움을 망쳐 놓고, 젊음과 즐거움이 세상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충고를 반복합니다. 그가 초상화를 파괴하는 까닭은 일생 동안 발목을 잡아 온 양심을 마침내 없애 버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양심을 죽이려는 시도로 인해서 스스로를 죽이게 되는 것이고요.” - 오스카 와일드, 1890년 7월 2일.
오스카 와일드의 묘지는 더블린이나 런던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 20구, 페르라세즈에 있다. 매년 수천 명의 방문객이 오스카 와일드의 묘지를 찾는다고 하는데 2011년, 묘지를 보호하기 위해 유리장벽을 둘렀다. 이유는 방문객들이 립스틱을 입에 바른 후 묘지에 키스 자국을 남기는 전통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돌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키스방지’ 유리벽이다. 방문객들은 왜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일까? 방문객 모두가 생각 없고 저속한 쾌락주의자들은 아닐 것이다. 그들 속에는 오스카에게 투영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 있음에 틀림없다. 오스카를 변태적이고 예술만을 탐미한 퇴폐주의자로 보기에는 우리 속에 오스카를 닮은 구석이 너무 많이 있다. 바질, 헨리, 도리언을 비웃으며 내 안에 숨겨 놓기에는 너무나 위태로워 꿈틀꿈틀하는 욕망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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