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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사소한 독서

루쉰,『아큐정전(阿Q正傳)』 재미있게 읽기

by 하늘밑 2025. 9. 19.
아Q정전 루쉰 이욱연 번역 문학동네 2011

 
「루쉰을 그리워하며」
위대한 인물이 출현하지 않은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가련한 집단이고 , 위대한 인물이 있음에도 그를 옹호하고 사랑하고 숭배할 줄 모르는 나라는 희망이 없는 노예의 나라다. 루쉰의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은 민족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였고, 루쉰의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은 중국이 여전히 노예성이 농후한 절망적인 국가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루쉰의 영구가 어둠 속에서 땅에 묻히자, 서쪽하늘 귀퉁이에선 옅은 붉은 빛 새 달이 떠올랐다. -욱달부(郁達夫, 1896∼1945) 1936년 10월 24일 상해에서-
 
1. 『아큐정전(阿Q正傳)』의 줄거리 
 
이 소설의 주인공 아Q는 시골의 날품팔이 인생이다. 그는 마을의 지주 자오 가문과 은근히 한 혈족이라고 으스댔다가, 그 집안으로부터 허풍을 떤다고 곤욕을 치른다. 그러나 그는 업신여김을 당할망정 스스로 비굴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는 거리에서 털보 사내와 싸움이 붙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군자는 말을 하지 손을 쓰지 않는다”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아Q는 혁명당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혁명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 된다’는 소리를 들은 뒤 마을에서 혁명당을 자처한다. 그를 박대하던 자오 집안사람들이 그의 허풍에 놀라 벌벌 떨자 더욱 기고만장해진다. 혁명의 혼란 속에서 자오 집안이 강탈당한 사건이 일어나자 아무것도 모른 채 잠만 자던 아Q는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결국 형장에서 총살을 당한다.
 
2. 질문들
 
★「아Q정전」은 1921년 12월 4일부터 1922년 2월 12일까지 신보부간《晨报副刊》에 파인(巴人:하찮은 사람)이란 필명으로 매주, 격주로 연재했던 소설입니다. 첫 회의 글은 재미있게도 문예란이 아닌 유머[開心話]란에 실렸습니다. 루쉰이 회고한 다음 글이 의미하는 것을 말해봅시다.
 
「아Q정전」이 한 회 또 한 회 단락을 지어 발표되고 있을 무렵, 많은 사람이 다음엔 자기가 당하는 차례가 아닐까 하고 전전긍긍했다. 또 실제로 친구 중 한 사람은 얼굴을 맞대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아Q정전」의 어제 이야기는 내 험담인 것 같단 말야. 그리고 「아Q정전」을 쓴 작가는 아무개가 분명해, 왜냐하면 나의 그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개 밖에 없거든...”  -「아Q정전」의 내력, 『화개집속편(華蓋集續編)』
 
★「아Q정전」의 ‘Q’의 의미를 여러 주장을 참고해 말해볼까요?
 
“대관절 아Quei는 계수나무 계(桂) 자를 쓴 아구이(阿桂)일까, 귀할 귀(貴)자를 쓴 아구이(阿貴)일까?” (p.13)
 
주장(1) 미스테리 ‘Question’ 이다!
주장(2) 중국인들의 변발을 위에서 바라본 모양이다.
주장(3) ‘변발’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queue’이다
주장(4) 마루오츠네키[丸尾常喜, 1937~ ] 귀신이란 뜻이 ‘鬼’이다.
 
★ 「아Q정전」은 1910년 신해혁명 전후 ‘웨이좡[未莊:이름 없는 마을]’이 주무대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고전으로 읽히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아Q정전」이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말해 볼까요?
 
- 정신승리법: 내 결점을 인정할 수 없다.
- 노려보기: 자기 인생에 대한 게으름
- 약자괴롭히기: 가짜 승리감에 도취되다
- 노예근성: 강자에게 먹히고 약자를 먹다
- 패거리 의식: 구경꾼 무리에 속하다. 패거리의 눈빛
- 혁명이 뭐길래: 갖고 싶은 걸 다 갖는 것이 혁명?. 실패한 혁명, 민중의 희생
『어떻게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너머학교 참고
 
★「아Q정전」읽기의 한계를 지적하는 다음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루쉰은「‘외침’자서」에서 더욱 절망적으로 당시 중국을 출국없는 ‘철의 방(鐵之屋)’으로, 중국인을 ‘철의 방’에서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죽어가는 잠에 취한 사람으로 비유했다. 그럼 ‘아Q정전’은 주인공 아Q가 ‘정신승리법’이라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끝없이 순환하는 강자의 지배논리에 순응하다가 결국 혁명과정에서 강도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닫힌 구조의 텍스트에 불과한 것인가? 중국인의 국민성이란 것도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깨어날 줄 모르는 절망적인 마비 상태 자체일 뿐인가?  ‘아Q정전’은 아Q의 ‘정신승리법’을 통해 중국인이 마비된 국민성을 정확하게 재현하고 신해혁명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구시대를 지양하고 신시대를 지향하는 리얼리즘의 궁극적 효과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아Q정전’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이 지점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지만, 이러한 의의만으로도 ‘아Q정전’은 ‘구체적 보편’의 의미를 달성한 세계고전으로서의 위상을 충분히 누려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Q정전’ 읽기가 이 지점에 정체됨으로써 ‘아Q정전’은 이제 더는 새로운 의미를 생산할 수 없는 화석화된 고전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김영문 『아Q생명의 여섯 순간』옮긴이의 말에서-
 
★ 중국의 신좌파 문학인 왕후이(汪暉,1959~ )교수는 「아Q정전」에서 ‘아Q’의 ‘정신승리법’이 효력을 상실하는 순간에 주목하라고 역설하였다. 작품의 어느 곳에 그런 순간이 드러나 있다고 봐야할까요?

 
“아Q가 병약하고 마비된 중국인의 전형이라면 그런 중국인에 대해 반성을 수행하는 루쉰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 ‘아Q’의 마비된 국민성과 그 마비된 국민성을 반성적․능동적으로 성찰하는 국민성이라는 이중성으로 「아Q정전」을 읽어야 한다. ‘아Q’에게는 정신승리법’의 압제를 뚫고 자신을 성찰하며 생생한 생명력을 드러내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