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소년이 온다》: 7개의 이야기

1장: 어린 새 - 동호 이야기
1인칭 관찰자 시점, 동호를 ‘너’로 표현한다. 광주 전남도청, 상무관이 배경이다. 동호는 친구인 정대를 찾지 못한다. 동호는 4장에 다시 등장한다. 계엄군이 쳐들어올 때 도청에 남아 있었다. 동호를 포함한 어린 학생 다섯이 도청 건물에서 연행되어 나오고 항복하고 나오는 그들을 향해 계엄군은 ‘빨갱이 새끼들’이라고 외치며 소총을 난사한다. 동호는 죽고 만다.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p.45
2장: 검은 숨 - 정대이야기
계엄군은 죽은 정대의 시신을 트럭에 실어서 도시 외곽의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그곳엔 이미 많은 주검이 쌓여 있었다. 죽은 몸을 빠져나와 혼이 되어버린 정대, 썩어가는 자기 몸을 보는 것은 고통이었고 그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자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 행복했던 기억으로 피하는 것이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 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라의 눈을 생각해." p.57
3장: 일곱 개의 뺨 - 은숙이야기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주인공 은숙의 심리만 전지적 입장에서 서술. 80년대 중반,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리는 액자형 구성이다. 비극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은숙은 출판사에서 교정일을 한다. 출판사에서 80년 광주와 관련한 책을 출간하려 하고 은숙은 그 일로 조사실에 끌려가 일곱 대의 뺨을 맞았다. 입안에 피가 터지고 부어오른 통증은 5월 광주의 기억을 더욱 떠오르게 한다. 그날 그곳에서 죽은 동호뿐 아니라 연행되어 고문당한 모든 이들에 대한 죄책감은 그녀의 인생을 무덤으로 만들어 놓았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 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p.103
4장: 쇠와 피 - 진수이야기
도청에서 연행된 이들은 고문을 당하고 징역을 살았다. 5월의 광주보다 더한 지옥이었다.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 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었다. 잡혀간 이들은 자기의 몸을 그저 ‘살덩어리’로 느낄 정도로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7년형을 선고받고 특사로 풀려나오긴 했으나 감시는 계속되었다. 결국 진수는 동호에 대한 죄책감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력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p.114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135
5장: 밤의 눈동자 - 선주이야기
1장과 마찬가지로 1인칭 관찰자 시점. 선주를 ‘당신’으로 표현한다. 선주는 공장 노조원이었다. 광주 그날, 차를 타고 도로를 다니며 메가폰을 잡고 가두방송을 했다. 계엄군에 체포되어 진수와 마찬가지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살아남은 다른 이들처럼 선주 역시 죽은 자, 특히 동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 죽기 위해 그 도시에 다시 갔어." 선주는 몇 년이 지나 죽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 그곳에서 동호의 시신 사진을 보았다.
"그러니까 그 여름에 넌(동호) 죽어 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낼 때, 네 몸은 땅 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p.173
선주는 죽으려는 마음을 접었다. 마흔이 넘은 그녀는 동호에 대한 죄책감,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을 견디며 살고 있다. 생을 포기하는 것은 또다시 지는 것이라고 믿기에.
6장: 꽃 핀 쪽으로 - 동호 엄마이야기
1인칭 시점. 죽은 아들을 회상하는 동호 엄마의 독백이다. 살아 있으면 마흔여섯이 되었을 중학생 동호. 가슴에 묻은 아들 동호를 30년이 지난 뒤에도 불러본다. 어린 동호는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싫어해 엄마의 손을 붙잡고 햇볕으로 가려고 했었다.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며 햇빛 있는 데로. 목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러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p.192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 작가이야기
1인칭 작가시점.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로 이사 온 작가는 광주 학살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 온 사진첩을 몰래 보고 나서 광주의 참상을 알게 되었다. 작가 가족이 살던 광주 중흥동 집에 새로 이사와 세 들어 살던 남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소설을 쓰기로 하고 취재를 시작했다. 그 학생 이름이 바로 동호였다.
"나는 가방을 열었다. 가지고 온 초들을 소년들의 무덤 앞에 차례로 놓았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아 불을 붙였다 기도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묵념하지도 않았다. 초들으 느리게 탔다. 소리 없이 일렁이며 주황빛 불꽃 속으로 빨려 들어 차츰 우묵해졌다. 한쪽 발목이 차가워진 것을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의 무덤 앞에 쌓인 눈 더미 속을 여태 디디고 있었던 것이다. 젖은 양말 속 살갗으로 눈은 천천히 스며들어왔다. 반투명한 날개처럼 파닥이는 불꽃의 가장자리를 나는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었다."p.215
* 문재학 그리고 동호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문재학은 항쟁의 중심지였던 옛 전남도청에서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작전으로 사망했다. 그는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사상자들을 돌보고 유족들을 안내했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이 공개한 사진에는 1980년 5월27일 오전 7시50분쯤 옛 전남도청 경찰국 2층 복도에 흥건히 피를 흘리며 쓰러진 교련복을 입은 소년 두 명이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 친구였던 문재학과 안종필이었다. 소설가 한강은 2014년 문재학의 이야기를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로 그려냈다. 소설 속 주인공 동호가 문재학 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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