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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사소한 독서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

by 하늘밑 2025. 9. 17.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

 
1.' 성해나'라는 소설가
 
첫 장을 펼치자마자 바로 빠져드는 소설이 있을까? 내게는 정유정의 소설 이후 오랜만에 성해나의 소설이 그렇다. 최은영이나 정세랑, 김기태, 김초엽은 알아도 성해나가 누구인지 몰랐던 나에게 그녀의 존재를 알게 해 준 것은 박정민 배우의 한 마디였다.
 
‘질투나는 재능이다. 성해나의 앞에서 나는 그저 존나 흉내만 내는 놈에 불과하다...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 박정민 배우
 
약간은 까칠하고 솔직한 박정민 배우가 저렇게 부러워하는 재능을 가진 작가가 누굴까? 호기심에 온라인 알라딘에 들어가 봤다. 소설부문 종합 1위 8주! 박정민의 말투라면 ‘존나’ 잘 나가고 있는 소설이었다. 내가 구입한 그녀의 두 번째 단편 소설집 『혼모노』는 4개월 만에 초판 14쇄를 찍고 있었다. 성해나는 나만 몰랐을 뿐 이미 존재감이 장난이 아닌 대단한 신예작가였다. 1994년생, 공식등단은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짧은 시기에 무엇이 이 젊은 작가를 특별하게 만든 것일까?
 
성해나 작가는 부러울 정도로 글을 물 흐르듯 잘 쓴다. 단문과 장문이 어울리고 대화체와 서사의 구분이 자연스럽다. 글을 읽으면 문장의 절주가 호흡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간결한 문장을 기본으로 숨 쉴 틈 없이 써내려 가지만 과하지 않고 상황에 무척 몰입하게 만든다. 결말에서는 여운은 물론 강력한 쾌감이 있다. 30년 된 박수무당과 신애기의 굿판을 그린 「혼모노」의 절정 부분(p.151~154)은 작가가 글을 여러 번 다듬었다기보다는, 일필휘지 몰아치듯 한 번에 써냈다는 확신이 들 정도다. 한마디로 젊은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  이 글을 쓰고 나중에 성해나가 씨네21과 한 인터뷰를 보고 깜놀했다. 작가가   사도 OST <아모리-만조상해원경>를 틀어두고「혼모노」결말을 썼다는 것이다. 이유로  <만조상해원경>은 망자의 넋을 달래는 경이라 소설과 접점이 있어서라고 했다니 성해나 작가의 치밀하면서 발칙한 시도가 신선했다.
 
『혼모노』에는 그녀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발표한 단편 7편을 엮어 놓았다. 대부분 단편소설집은 작가의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인물 설정과 사건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성해나의 작품 소재는 영화나 현대미술, 건축, 태극기부대, 무속, 메탈음악, 스타트업회사, 부유층의 일상 등 매우 다양하고 전문적이다. 글을 쓰기전 치밀한 현장답사와 자료조사를 했음이 분명하다. 글의 흐름은 거침없다고 해야 하나, 이야기의 전개는 단조로운 서사를 비웃듯 쾌감있게 질주하고 주인공들이 펼쳐내는 대화는 신선한 어휘력과 장면설정으로 매우 디테일하다. 인물은 열려있고 스토리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긴장감 있고 감각적인 스토리는 적절한 순간 결말에 이르러 소설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찌릿한 느낌의 쾌감이 섬찟 찾아온다. 가끔 등장하는 낯선 인물명이나 책, 영화, 노래 등은 작가의 지적과시로 볼 수 있지만 글의 매력을 떨어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성해나의 소설이 남기는 잊기 힘든 결말에 대해 말해야겠다는 갈급함을 느낀다.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여느 마침표가 성해나의 작품에서만큼은 완결을 위한 기능으로 쓰이지 않는다. 독자는 한동안 이야기가 지나간 자리에 우두커니 머무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여운이 남는다거나, 감상에 젖게 만드는 표현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마지막 문장 끝에 찍힌 마침표가 결말 자라에 덩그러니 남겨진 독자를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모노』해설, 양경언 평론가
 
스스로 부엉이처럼 밤에 글을 쓴다고 말한 작가는 소설을 쓰는 과정을 부엉이가 제대로 된 숨을 뱉기 위해 모구(毛球)를 쏟아내는 것으로 비유했다. 모구란 털 뿌리의 가장 깊은 부분이니 내 생각에는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뽑아낸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 역시 (부엉이의) 예리한 발톱으로 문장을 낚고, 너른 시선으로 사회의 아픔을 포착하며 열린 귀로 멀리 떨어진 이들의 이야기까지 경청하고 싶다.” - 작가의 말에서
 
성해나 같은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이다. 『혼모노』를 읽었으니 성해나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을 마저 읽을 예정이다. 그녀의 바람대로 한 청춘 작가가 지금보다 묵직한 숨을 내쉴 때까지, 가까이서, 먼 곳에서 지켜볼 요량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혼모노, 성해나 창비 2025


 
2. 『혼모노』, 가짜거나 진짜거나
 
단편 소설집 『혼모노』는 일곱 가지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한 번에 전 작품을 일독하다 보니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이 소설집에는 공통된 축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 삶을 덮고 있는 가식과 허상 속에 본질이 있다면 무엇인지, 허울만 남아 진짜라고 믿는 것, 혹은 잃고 싶어 하지 않은 그 어떤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소설은 허구의 문학 양식임에 틀림없지만 허구의 세계가 지향하는 세계는 언제나 냉엄한 현실이다. 쉽게 말해 현실은 참이고 소설은 가짜다. 그런데 소설이 직시하는 세상이 현실보다 현실 같다면 어떨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고, 대신 저 멀리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가짜를 가져와 진짜로 믿고 심지어 자기의 인생과 동일시한다면. 투사의 대상은 영화감독이나 아이돌 같은 대중이 열광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소소하게 일상에 드러나는 자신의 숨은 욕망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기엔 현재의 모습이 불만스럽다. 못나 보여도 진짜로 살면 되는 것인데 그것을 부정하자니 혼모노가 아닌 혼모노적인 사건을 만나게 되고 온갖 불안과 멸시, 변증들이 등장한다. 문제는 진짜와 가짜의 간극이 모호하여 깨닫기 쉽지 않다는 것. 불편하고 낯설고, 속물 같은 허상의 세계를 마주하는 것은 늘 당혹스럽다. 성해나의 소설은 그 당혹스러움을 경쾌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깨달음이 찾아온다.
 
혼모노」에서 30년 된 박수무당 문수는 장수할멈이라는 신에게 휘둘리는 인생이다. 어느 날 나타난 ‘신애기’라는 어린 무당에게 신기를 빼앗기고 질투심과 불안감에 휩싸인다. 신애기는 문수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며 깔아내린다. 마지막 굿판에서 문수는 무아지경을 경험하며 깨닫는다. 가짜의 자기발견이라고나 할까? 문수는 이제 자유로운 삶을 살 것 같다.
 
“삼십 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찌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p.153
 
「길티클럽: 호랑이만지기」에서 주인공은 길티클럽의 멤버로 김곤이라는 영화감독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길티클럽이라고 한 것은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겨가면서 대상을 좋아하는 골수팬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김곤이 어린 아역배우의 팔을 피멍이 들도록 꼬집었던 아동학대자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면서 주인공은 갈등한다. 내가 동경하던 대상은 진짜가 아니었나? 주인공은 김곤의 형식적이고 깔끔한 사과 앞에 왠지 모를 허망함을 느낀다. 김곤이 죄를 인정하는 순간 김곤에 대한 애정도 함께 무너져버렸다. 소설에서 ‘펑’이라고 한 재밌는 표현은 최면에서 깨어나듯 깨달음의 순간일 것이다.
 
“김곤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거듭 말하며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깊이 수그렸다. 그리고 그 순간...... 펑. 내 안에서 무언가 터졌다. 매캐한 연기가 사방을 감싸듯 눈앞이 뿌예졌다. 땅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p.97
 
「스무드」에서는 어떤가? 주인공 듀이는 한국계 3세대 이민자이자 유명 미술작가의 매니저다. 서울을 처음 방문하고 아무런 선입견 없이 얼떨결에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듀이는 집회 참가자의 호의 속에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포개진 배지, 한국 대통령이 얼굴이 그려진 배지를 선물로 받는다. 듀이가 마주친 한국은 태극기 집회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듀이는 끝내 집회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극우집회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듀이의 눈에 그것은 축제였다.
 
“축제의 열기는 뜨거웠다. 무대는 완벽히 세팅되어 있었고 더 많은 이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스피커에서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컨트리보다 더 빠르고 흥겨우며 하우스보다는 건전한 음악에 맞추어 사람들은 팔을 흔들고 춤을 추었다.” p.106
 
그는 아무렇지 않게 미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사진을 전송하며 메시지를 덧붙인다. “저 지금 이승만광장에 있어요. 아주 좋은 사람들과 함께요.” 듀이는 한국의 진짜 모습을 본 것일까? 듀이가 느끼는 호의와 친절은 진실의 한쪽 면만 상상 속에서 경험한 것에 불과했다. 거짓이 진짜처럼 복제되어 메시지를 통해 공유되었다. 이민자의 아들로 한국태생을 숨기며 살았던 아버지가 듀이가 보낸 메시지를 받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듀이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은 것일까?
 
「구의 집:갈월동 98번지」를 이 소설책에서 가장 흥미 있게 읽었다.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참신한 설정이 돋보인다. 소설은 구보승이라는 건축가가 갈월동 98번지에 ‘경동수련원’을 은밀하게 설계하고 짓는 이야기다. 소설을 읽다 보면 ‘경동수련원’이 군사정권시절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구의 집’이라 일컬어지는 ‘경동수련원’은 군부의 체포와 구금, 고문 등 무자비한 폭력을 은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처음에 야망이 없고 물렁해 보였던 구보승은 오직 설계의 내용에만 집착하며 광기에 빠진다. 그는 건물의 정당성을 의심했어야 함에도 관심은 오로지 그가 믿는 진짜 세계, 현실에서 동떨어진 완벽한 고문실의 재현이었다. 소설은 구보승이 노인이 돼 다시 그곳을 찾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끝내 자신은 인간을 위한 공간을 지었다고 믿는다. 인간의 희망을 절망으로 바꿀 수 있는 최정점의 완벽한 공간을 만드는 것, 구보승이 믿는 진짜는 그것밖에 없었다.
 
“설계도는 구조와 자재, 설비까지 완벽히 짜여 있었다. 취조실의 구조는 전과 비슷했으나 한 가지 달라진 계 있다면 창문이었다. 취조실마다 폭이 좁은 수직창이 배치되어 있었다....구보승은 화색을 띤 채 말을 이었다. 빛이 공간의 형태를 드러내 조사자에게 두려움을 심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무력감을 안길 거라고.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p.191~192
 
 
「메탈」은 1994년생 어촌 출신 우림, 조현, 시우, 세 소년의 청춘을 그린 이야기다. 이들은 진득한 우정을 나누지만, 그 우정은 닥친 현실 앞에 깨어질 듯 불안하다. 세 청춘이 믿었던 진짜 세계는 메탈음악이 영원할 것이라는 절대 믿음이었다. 시간은 흘러 기타와 보컬을 맡았던 우림은 어머니를 따라 교회밴드에서 연주하고, 드러머인 시우는 결혼해 메탈이 아니라 ‘상어가족’을 흥얼거린다. 베이스를 맡던 조현은 서울로 떠나 오랜 준비 끝에 공기업에 입사한다. 그들에게 진짜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에 묻혀 사라진 우정과 꿈, 그들은 다시 만나 화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살아가는 본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미련함에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책꽂이를 들어내고 그 안에 꽂혀 있던 앨범들을 하나하나 정리할 때, 우림의 가슴속에서 따끔한 전류가 꿈틀댄다. 람슈타인, 모터헤드, 주다스 프리스트......잊고 싶었지만 깊숙이 잔존해 있던 여러 겹의 기억. 귓가로 흘러들어와 온몸을 한 바퀴 훑고서도 빠져나가지 않던 격렬한 열기.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두려워하지 않고 한길을 내달리고 같은 꿈을 꾸던 소년들....”p.334
 
우호적인 감정」은 뒷맛이 참 개운치 않은 소설이다. 중년급 인물과 젊은 세대가 한 팀을 이루어 마을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소설 속 스타트업은 위아래 세대가 허물없이 어울리고, 직급 없이 서로 닉네임을 부르고, 자유로운 복장에 생맥주 디스펜서도 갖추어 놓았다. 겉으로 쿨한 수평관계를 지향하지만 감추어진 본성 속에는 서로를 구분하는 위계가 무섭게 존재한다. 우호적인 감정이라는 것이 있을까? 우호적 감정이란 우호적으로 보이려는 일종의 감정노동에 가깝다. 각자의 상여금이 실수로 공개되며 관계는 결정적으로 깨어지기 시작한다. 함께 공생하고 발전하려는 현대사회의 연대는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짜 환상일 수 있다. 그보다는 상대를 인정하는 원칙적인 관계가 우선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이 불편한 허상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딤섬으로 위트 있게 표현했다.
 
“사람들과 섞여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다 딤섬을 입에 넣었다. 입안에서 얇은 피가 터지며 뜨거운 육즙이 흘러나왔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서로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주고 술잔을 채워주며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정이 흘러넘치고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 안에서, 나는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p.240
 
「잉태기」는 며느리와 시부가 딸이면서 손녀인 서진의 출산을 놓고 벌이는 막장활극이다. 임신한 딸을 괌으로 보내 원정 출산시키려는 엄마의 성취욕과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손녀에 대한 소유욕을 드러내는 시부의 관계는 흔한 고부갈등보다 격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며느리와 시부는 근본부터 서로가 남이라는 배타적인 인식을 뼛속에서 공유한다. 서로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만을 인정해야 하는 단순한 관계인 것을 알았다면 그나마 예의라도 지키며 선을 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을 화해시킬 수 있는 존재는 유일하게 서진 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며느리와 시부, 둘 다 딸이며 손녀인 서진을 끔찍하게 위하지만 모든 결정에서 서진의 선택은 없다는 것이다. 소설 막바지 공항 출국장, 출국을 앞두고 양수가 터진 서진 앞에 괴성을 내며 다투는 며느리와 시부의 모습은 그야말로 글을 읽는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의 얼굴을 화끈하게 한다. 장면을 떠올리면 매우 비극적인 상황임이 틀림없는데 이상하게 쾌감이 느껴진다. 이게 현실이라면 이런 막장이 없는데 슬퍼해야 할 찰나에 웃음이 나오니 이런 악다구니가 없고 블랙코미디가 아니면 무엇일까 싶다. 그러면서 머리가 흔들리며 쭈뼛해진다. 이런 웃픈 모습을 솔직히 우리도 한두 번씩 직접 경험하니 말이다. 며느리와 시부가 서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듯 우리도 정작 중요한 목소리를 듣고 있기나 한 것인지.
 
“괴성이 오간다. 오가고 오가다 끝에는 누구 것인지도 모르게 섞여버린다. 나의 목소리인지 시부의 목소리인지도 모르게. 우리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괌행 비행기 출국 알림 방송이 들려온다. 시부와 나 사이에서 서진이 무슨 말인가 한다. 연갈색 눈을 굴리며, 아주 작게, 기운이 다 빠진 소리로, 힘겹게.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리고 당신도.? p.297
 

성해나 작가, 창비제공

 

"야행성인 부엉이처럼 나도 밤에 소설을 쓴다. 작품집 교정을 보며 그 무수한 밤들을 돌이켜보았다. 막힘 없이 써내려간 밤도 있었으나 돌이켜보면 빈 문서 앞에서 버벅거리고 우려하던 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때의 곡절도 다시 숨 쉬기 위해 모아 온 실낱이라고 생각하니 귀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