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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사소한 독서

『스토너』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한 삶

by 하늘밑 2025. 9. 9.

『스토너』 특별할 것 없는 특별한 삶

  

특별한 삶이라는 것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의 ‘특별한’이란 말이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삶’이 있을 뿐이고 ‘삶’은 늘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소설 『스토너』에는 이례적으로 문학평론가인 신형철씨의 짧은 독서평을 마지막 장에 실어 놓았다. 그의 말이 참 맘에 와 닿았다.
 
“스토너의 삶은 뜻밖의 ‘기회’와 그에 따르는 ‘대가’에 언제나 공평하게 점령당한다. 그런 그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대’와 ‘실망’의 총합은 결국 0이다. 이 계산 과정은 경이롭도록 정확하게 어떤 아름다움에까지 이른다.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눈물이 나도록 기쁜 날들과 웃음이 나도록 슬픈 날들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모두 저 속절없는 0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스토너처럼, 삶이라는 서술어의 보편 주어 같은 이 사람 윌리엄 스토너처럼.”
 
신형철씨의 말대로 라면 삶이란 결국 0으로 수렴한다. 허무함으로 텅 비어버린 숫자라 의미 없을 것 같지만 기대와 실망이 포물선처럼 엮이다가 죽음이라는 안정점에 이르러 0으로 합쳐지는 것이다. 눈물 나도록 기쁜 날이 있으면 죽고 싶을 정도로 슬픈 날이 있어야 한다. 그 대척점이 많을수록 인생은 험난하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0의 상태를 벗어난 것을 ‘특별하다’고 부를 수는 있으나 결국 삶은 ‘속절없이’ 0을 향해 갈 뿐이다. 우리는 왜 이런 허무한 인생에 자꾸 의미를 부여하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것일까?

스토너 존윌리암스 RHK 2020


 
소설『스토너』의 주인공 스토너는 소설 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것이 뻔하다고 썼다. 아비비리그를 나온 것도 아니고, 저명한 책을 두루 써 영문학자로서 명성을 떨친 것도 아니고, 교육자로 봐도 편향된 시각이 있어서 학생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평생 이어갔으며, 난관을 극복하는 용기보다는 그것을 수용하고 인내하는 과정에서 밝게 빛나기 보다 지리멸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스토너는 적어도 자신에게는 솔직했고, 자기 가슴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았으며 무엇보다 삶을 관조할 줄 알았다. 옳든 옳지 않든 생각하는 것을 실천으로 옮겼고, 이성적 판단에 주춤하더라도 열정이 향하는 것이면 끝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집스럽게 쟁취하려고 했다. 그는 삶을 사랑했다. 결코 실패자가 아니었다. 스토너를 평범한 인물이었다고 말한다면 누구도 평범하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 스토너의 인생은 나와 주변의 누구의 모습 속에 있다. '아! 나도 그랬는데!'하며 공감을 부른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오랫동안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나의 이런 행동을 이해할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소설 속 스토너의 인생을 빛나게 한 인물과 몇 장면을 골라봤다.


* 스승 아처 슬론을 만나다

 미주리 대학교에 입학한 스토너는 50대 초반의 영문학자, 아처 슬론교수를 수업에서 만났다. 모세와 하나님이 첫 대면하듯 아처 슬론은 스토너의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놓았다. 소설의 초반에  아처 슬론은 학생들과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읽는다. 소설에 나오는 부분은 찾아보니 73번째 소네트다. 소설 속에서 전문을 길게 인용을 해 놓았는데 다른 번역으로 옮겨봤다. 이 책이 기본적으로 인문학자의 이야기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 스토너가  농과대학에 들어갔다가 영문학개론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73번 소네트를 읽고 문학에 눈을 뜨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인용자체가 감동적이다. 
 

소네트 73
한 해 중 그런 계절을 그대는 내게서 보리라. 전엔 예쁜 새들이 노래했지만 이젠 황폐한 성가대석, 추위를 견디며 흔들리는 그 가지들 위에 누런 잎들 하나 없거나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계절을. 내게서 그대는 보리라, 해가 진 후 서녘에서 스러지는 그런 날의 황혼을, 만물을 휴식 속에 밀봉해버리는 죽음의 분신인 시커먼 밤이 조금씩 앗아가는 황혼을. 내게서 그대는 보리라, 불타오르게 해준 것에다 태워져, 꺼질 수밖에 없는 임종의 자리처럼, 제 젊음의 재 위에 누워 있는 그런 불의 희미한 가물거림을. 그대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 사랑 더 강해져, 그대가 머지않아 잃을 수밖에 없는 그것을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 윤준  옮김, <영국 대표시선집>(실천문학사, 2016) 

 

Sonnet 73

That time of year thou mayst in me behold, When yellow leaves, or none, or few, do hang Upon those boughs which shake against the cold, Bare ruined choirs, where late the sweet birds sang. In me thou see'st the twilight of such day As after sunset fadeth in the west, Which by and by black night doth take away, Death's second self, that seals up all in rest. In me thou see'st the glowing of such fire That on the ashes of his youth doth lie, As the death-bed whereon it must expire, Consumed with that which it was nourish'd by. This thou perceivest, which makes thy love more strong, To love that well which thou must leave ere long. 


 
 슬론의 시선이 윌리엄 스토너에게 되돌아왔다. 그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것도 있네, 스토너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모르겠나 스토너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갑자기 슬론이 아주 멀게 보였다. 연구실의 벽들도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스토너는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슬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 부모와의 이별

스토너는 미주리 농과대학을 졸업하면 고향인 분빌에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고 농부로 살아갈 예정이었다. 부모 또한 그런 이유로 스토너를 미주리 농대에 어렵게 입학시켰다. 스토너는 영문학개론을 수강하며 자신의 진로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졸업식을 할 때까지 부모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졸업식날 스토너는 마침내 부모님께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두 분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는 부모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누구든 인생의 분깃점에서 스토너처럼 결단하기가 쉽지 않다.  스토너를 대하는 부모의 모습은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우리는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다. 그러니 걱정마라" 자식을 위하는 부모님이라면 늘 하던 말씀이다. 
 
나는 모르겠다. 아버지가 말했다. 지치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널 이곳에 보내는 것이 나로서는 널 위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네 어머니랑 나는 언제나 너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압니다. 스토너가 말했다. 더 이상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두 분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올여름에 돌아가서 한동안 일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네 생각에 꼭 여기 남아서 공부를 해야겠거든 그렇게 해야지. 네 어머니랑 나는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다.
 
 

* 경이로운 학문의 세계로

 촌뜨기 소년 스토너는 친구가 없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그는 대학 도서관 서가에 들어가 수천 권의 책들을 누비고 다녔다. 가죽, 천, 종이로 된 책들의 퀴퀴한 냄새를 들이마시며 이국적인 향기를 느꼈다. 낯선 책등과 표지, 그의 손길에 반항하지 않는 종이의 찌릿찌릿함. 경이로운 지식의 세계 앞에서 스토너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의 음성을 들었던 것처럼 전율했다.
 
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그리고 이때 생전 처음으로 그는 고독을 느꼈다. 밤에 다락방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방구석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팸프의 불빛이 구석의 어둠에 맞서 너울거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둠이 빛 속으로 모여들어 그가 읽던 책에 나오는 상상의 모습들을 펼쳐 보였다. 그러면 자신이 시간을 초월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의 중에 아처 슬론이 그에게 말을 걸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과거가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한데 모이고, 죽은 자들이 그이 앞에 되살아났다. 그렇게 과거와 망자가 현재의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흘러 들어오면 그는 순간적으로 아주 강렬한 환상을 보았다. 자신을 압축해서 집어삼킨 그 환상 속에서 그는 도망칠 길도,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트라스탄과 아름다운 이졸데가 그이 앞을 거닐었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강령한 어둠 속에서 빙빙 돌았다. 헬레네와 총명한 파리스는 자신들의 행동이 낳은 결과 때문에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어둠 속에서 솟아올랐다.
 

* 징집을 외면하다

 스토너가 대학에 들어온 지 7년 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독일군과 싸우기 위해 자진입대했다. 스토너의 절친인 매스터스와 핀치도 그렇게 했다. 스토너는 어떤 확신이 있었다기보다 결국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대학에 그대로 남기로 결정했다. 절친마저 이런 스토너를 이해하지 못하고 실망했다. 이유가 어쨌거나 이기적인 판단임에 분명했다. 전쟁이 끝난 후 핀치는 돌아왔지만 매스터치는 입대 후 7개월 만에 프랑스 어느 전장에서 전사했다. 자기보다 유능했던 매스터치의 죽음은 늘 스토너의 기억 속에 떠올라 그를 부끄럽게 했다. 징집을 외면한 것처럼 스토너의 불운은 오로지 그의 선택에 대한 대가로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결코 운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나중에 징병이 시작되었을 때도 그는 징병유예를 신청하면서 이렇다 할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 많은 동료들이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는 알고 있었다. 학생들이 평소처럼 자신을 대하는 것 같은데도 불손한 태도가 예리한 칼날처럼 비어져 나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 결혼, 슬픈 운명

 스토너는 학교행사 리셉션에서 학장의 사촌뻘인 이디스 엘레인 보스트윅을 만났다. 이디스는 있는 집안의 딸로 스토너가 지금까지 본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와 결혼했으나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이디스는 스토너와 너무 달랐다. 이디스는 스토너를 가장 잘 아는 만큼 그를 무시했다. 
 
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가 애정을 담아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만지면 그녀는 그를 외면하고 내면으로 숨어 들어가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했다. 그리고 나서 며칠 동안 전보다 한층 더 힘들게 새로운 한계까지 자신을 혹사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같은 침대를 쓰는 것만을 고집스럽게 그만두지 않았다.
 


 * 숙적의 등장, 로맥스

 

 미주리 대학에 아처 슬론의 후임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홀리스 N. 로맥스가 부임했다. 키는 150cm, 왼쪽 어깨에서 목을 향해 작은 혹이 솟아있고 상반신은 구부정했지만 강력한 외모만큼이나 미남형 얼굴로 지적인 인물이었다. 로맥스는 나중에 스토너와 찰스 워커라는 학생의 수강을 두고 크게 대립하여 숙적이 되었다. 그러나 로맥스는 객관적으로 스토너보다는 스펙이 화려하고 처세가 뛰어나 평판이 좋은 것은 물론 뛰어난 언변으로 스토너를 제치고 영문과 학과장이 되었다. 반면 스토너는 정년은 보장받았으나 끝까지 조교수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스토너는 적대적인 교수들과 무례한 대학원생들 앞에서 많은 것을 감내해야 했다. 스토너는 로맥스를 은근 무시했지만 서로 비슷한 것에서 오는 깊은 연민을 느꼈다.
 
그(로맥스)는 오하이오에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기업을 상당히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사업가였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기형적인 외모 때문에 고립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일찍부터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으며, 자신을 방어할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고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이 털어놓았다. 그는 길로 긴 낮과 밤을 혼자 보내며 자신의 일그러진 몸이 강요하는 한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다가 점차 자유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 자유의 본질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그가 느끼는 자유로움도 더욱 강렬해졌다. 윌리엄 스토너는 이 말을 들으면서 그에게 뜻밖의 친근감을 느꼈다.....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두 사람은 비슷했다. 비록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또는 심지어 자신에게조차 그 사실을 시인하고 싶어 하지 않겠지만.

 

우연하게 찾아온 사랑, 캐서린 드리스콜

 
스토너는 자신의 세미나를 들었던 젊은 강사, 캐서린 드리스콜과 사랑에 빠졌다. 명백한 불륜이었다. 이디스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남편과 소원해진 관계에서 각자의 생활에 만족하던 처지라 애써 묵인했다. 스토너는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나면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 아무리 놀아도 지치지 않은 아이들처럼 사랑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또 사랑을 나눴다. 스토너가 평범한 삶을 살며 그렇고 그런, 성공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절하한다면 나는 당장에 면박을 주고 싶다. 그런 사람은 이런 사랑을 결코 할 수가 없어!! 모든 것에 실패했더라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가!! 캐서린 때문에 스토너는 40이 넘어서도 열정 가득한 인생을 살 수 있었다. 캐서린과 헤어진 후 스토너는 한동안 그녀의 소식을 모르다가 1949년, 그녀가 40살이 되던 해 동부의 한 대형 대학 출판부가 펴낸 그녀의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훌륭한 책이었다. 책의 앞장에는 ‘W,S,에게’라고 쓴 헌사가 적혀있었다. 윌리엄 스토너의 약자였다. 캐서린은 스토너를 잊지 않았고 늘 그를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존 윌리암스는 레이크 오자크에서 두 사람이 만나 밀애를 나누는 장면을 긴 지면을 할애하여 아름답게 묘사해 놓았다. 어떤 이유였을까?
 
1년 내내 문을 여는 마을 유일의 숙소에 손님은 두 사람뿐이었다. 거기서 두 사람은 열흘을 함께 보냈다. 두 사람이 도착하기 사흘 전에 폭설이 내렸는데, 두 사람이 머무르는 동안에도 또 눈이 와서 그곳에 있는 동안 내내 완만하게 구불거리는 산들이 하얀 눈에 덮여 있었다. 두 사람이 빌린 오두막에는 침실 하나, 거실 하나, 작은 주방 하나가 있었다. 다른 오두막들과 조금 떨어진 이 오두막에서는 겨울 동안 줄곧 얼어붙어 있는 호수가 내다보였다. 아침에 깨어보면 두 사람은 서로 뒤엉킨 채 누워 있었다. 두툼한 담요를 덮고 있는 몸이 따스하고 풍요로웠다. 두 사람은 담요 속에서 고개만 내밀고 자신들이 내뱉은 숨결이 차가운 공기 속에 커다란 구름을 만들어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아이처럼 웃으며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서로 몸을 찰싹 붙였다. 아침에 사랑을 나눈 뒤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 해가 동쪽 창문에 다다를 때까지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다. 아니면 잠에서 깨자마자 스토너가 벌떡 일어나 캐서린의 알몸을 덮은 담요를 걷어내고 비명을 지르는 그녀를 향해 껄껄 웃으며 커다란 벽난로에 불을 붙일 때도 있었다. 불이 붙으면 두 사람 은 담요 한 장만 두른 채 벽난로 앞에서 붙어 앉아 자기들의 체온과 점점 커지는 불꽃이 몸을 데워주기를 기다렸다.
 

* 죽음이 가져온 용서와 평안

 정년을 얼마 앞둔 스토너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암이었다. 퇴직을 서둘렀고 병치료를 시작했으나 다가오는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딸 그레이스는 원하지 않은 임신과 알코올중독으로 부모에게 적잖은 근심거리였으나 지금은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을 둔 엄마가 되었다. 그레이스는 병상에서 그간 아버지를 실망시켰다고 고백했지만 스토너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딸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스토너는 옛날 책이나 그림이 푹 빠져 아빠의 곁을 지키며 빛났던 사랑스러운 딸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여행자가 그렇듯 여행은 떠나기 전에 두렵다. 여행이 죽음이라면 스토너는 아직 여행을 떠나기에는 생각이 많았다.  스토너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아내 이디스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일정한 연대감이 고요하게 자리 잡았다. 사랑을 다시 시작할 때의 느낌이었다.
 
이제는 그녀를 바라보아도 후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늦은 오후의 부드러운 햇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주름 없는 젊은 얼굴처럼 보였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무정한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아주 먼 거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그의 손이 이불 위를 움직여 그녀의 손에 가닿았다.
 


 
소설 『스토너』는 특별할 것 없지만 매우 특별해 보이는 삶을 살다 간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닥친 삶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살아내었다. 스토너가 살다 간 인생을 성공했다 실패했다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열정에 이끌리어 참 애잔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다. 캐서린과의 사랑은 그가 누린 행복의 절정이었다. 그는 굴곡진 인생의 고비마다 스스로 방향을 선택했다. 때로는 그 선택이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부르거나 남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이기적인 결말을 초래했다. 그는 인생 끝까지 그것을 감내했다. 상황을 반전시키는 인생의 극적인 행운은 없었지만 그의 곁에는 적은 수였지만 훌륭한 스승과 친구가 있었다. 그는 생에 대한 연민이 많았고 사랑할 줄 알았다. 스토너의 삶은 결코 슬프거나 불행하지 않았다. 적어도 스토너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서는 주저하지 않았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가 병상에서 스스로에게 재차 묻던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나의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He had no wish to die; but there were moments . . . when he looked forward impatiently, as one might look to the moment of a journey that one does not particularly wish to take. And like any traveler, he felt that there were many things he had to do before he left; yet he could not think what they were”

“He had, in odd ways, given [love] to every moment of his life, and had perhaps given it most fully when he was unaware of his giving. It was a passion neither of the mind nor of the flesh; rather, it was a force that comprehended them both, as if they were but the matter of love, its specific substance. To a woman or to a poem, it said simply: Look! I am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