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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일탐

진짜와 가짜 구별하기

by 하늘밑 2025. 9. 11.

박지원(朴趾源),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
 
옛글을 모방하여 글을 쓰기를, 거울이 형체를 비추듯이 쓴다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반대로 되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물이 형체를 비추듯이 쓰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래와 위가 거꾸로 보이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이 쓰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낮이 되면 난쟁이가 되고 해가 지면 키다리가 되는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림이 형체를 묘사하듯이 쓰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걸어가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소리가 없는데 어떻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끝내 비슷할 수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비슷하기를 구하는가? 비슷함을 구하는 것은 참되지 않다. 세상에서 이른바 서로 같은 것을 말할 때 ‘꼭 닮았다’는 뜻으로 ‘혹초(酷肖)’라 일컫고, 분별하기 어려운 것을 말할 때 ‘진짜에 아주 가깝다’는 뜻으로 ‘핍진(逼眞)’이라고 말한다. 무릇 ‘진眞’이라 말하거나 ‘초肖’라고 말할 때에는 그 속에 ‘가짜假’와 ‘다름異’의 뜻이 담겨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전혀 다르면서도 서로 비슷한 것이 있다. 언어가 달라도 통역을 통해 의사를 소통할 수 있고, 자체(字體)가 달라도 모두 문장을 지을 수 있다. 왜일까? 겉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마음은 서로 같기 때문이다. 이로 보건대, ‘마음이 비슷한 것心似’은 내면의 의도라 할 것이요 ‘겉모습이 비슷한 것形似’은 피상적인 껍데기라 하겠다.
 
倣古爲文。如鏡之照形。可謂似也歟。曰左右相反。惡得而似也。如水之寫形。可謂似也歟。曰本末倒見。惡得而似也。如影之隨形。可謂似也歟。曰午陽則侏儒僬僥。斜日則龍伯防風。惡得而似也。如畵之描形。可謂似也歟。曰行者不動。語者無聲。惡得而似也。曰然則終不可得而似歟。
曰夫何求乎似也。求似者非眞也。天下之所謂相同者。必稱酷肖。難辨者亦曰逼眞。夫語眞語肖之際。假與異在其中矣。故天下有難解而可學。絶異而相似者。鞮象寄譯。可以通意。篆籒隷楷。皆能成文。何則。所異者形。所同者心故耳。繇是觀之。心似者志意也。形似者皮毛也。박지원(朴趾源),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
 
* 진짜는 하나다. 아무리 핍진하고 닮았어도 가짜는 가짜다. 비슷한 것을 비슷할 뿐 진짜가 아닌 것이다. 진짜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는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깔려있다. 그러니 굳이 비슷하기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 연암은 겉모습을 닮은 것을 '형사(形似)', 내면을 닮은 것을 '심사(心似)'라고 했다. 거울이 형체를 비추는 것이나 물이 형상을 비추는 것, 그림자가 형체를 따라가는 것은 모두 형사이다. 형사는 명품을 모방한 짝퉁이다. 반면 심사는 새로움과 다름을 추구하면서 그 안의 담긴 정신은 하나로 통한다. 글쓰기에 비유하면 어떨까? 자기 목소리와 개성이 없는 글은 형사일 뿐이고 반면 자신을 드러내고 솔직하게 쓴 글은 작가의 정신을 표현한 심사에 해당한다. 비슷한 것이 너무 넘쳐나는 시대다. 보이는 삶에 집착하다 보니 진득한 글쓰기보다는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느라 더 분주하다.  무엇이 진짜인지  판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진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