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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일탐

장자고분(莊子鼓盆), 장자가 아내의 죽음을 노래하다

by 하늘밑 2025. 9. 4.

 

장자고분(莊子鼓盆), 장자가 아내의 죽음을 노래하다

 

장자(莊子)의 아내가 죽어서 혜자(惠子)가 조문하러 갔더니 장자는 다리를 뻗고 철퍼덕 앉아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말했다. “아내와 함께 살면서 자식까지 키우고 함께 늙다가 아내가 죽었는데 곡을 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술 더 떠서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가 답했다. “그렇지 않다네. 사람이 처음 죽었을 때에 난들 어찌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 삶의 처음을 살펴보았더니 본래 삶이 없었고,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몸도 없었고, 몸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기운조차 없더란 거지. 황홀한 가운데에 섞여 있다가 변하여 기가 나타나고 기가 변하여 몸이 이루어지고 몸이 변하여 생명이 되는 거야. 지금 또 변하여 죽었으니 이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이 되어서 사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같은 것이야. 마누라가 천지의 큰 집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데 내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사람들이 늘 하던 것을 따라 울어대는 것은 스스로 천명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곡을 그친 것이라네.”

 

莊子妻死, 惠子吊之,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 惠子曰: “與人居, 長子老身, 死不哭亦足矣. 又鼓盆而歌, 不亦甚乎!” 莊子曰:“不然. 是其始死也, 我獨何能無槪然! 察其始而本無生; 非徒無生也, 而本無形; 非徙無形也, 而本無氣. 雜乎芒芴之間, 變而有氣, 氣變而有形, 形變而有生. 今又變而之死, 是相與爲春秋冬夏四時行也. 人且偃然寢於巨室, 而我噭噭然隨而哭之, 自以爲不通乎命, 故止也.” 『莊子』 「至樂」

 

* 삶과 죽음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질문이고 종교의 출발점이다. 죽음은 개인에게 삶의 종말이고 사람 사이에서는 관계의 종말이다. 누구나 죽음을 꺼려한다. 죽은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인류역사의 보편적인 유산이 되었다. 종교를 비롯한 예술과 문학과 철학은 죽음의 의미를 갖가지 변증과 이유를 들어 다양한 해석을 늘어놓는다. 

 

장자는 죽음을 계절의 변화로 설명하였다. 사계절이 순환하는 변화와 같다는 것이다. 생명의 시작은 기가 변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오늘날 과학자나 유물론자들이 인간의 죽음을 원자의 이합(離合)으로 설명하는 것과 같다. 장자는 삶과 죽음의 본질을 깨닫고 죽음을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드렸다. 죽은 아내는 마치 큰 집에 편히 누워 있는 것처럼 천지의 조화와 순환 속에 들어갔으니 그것이 그리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장자는 종교적 해답에 의존하지 않았다. 죽음을 긍정함으로 삶의 의미를 죽음 너머로 확장시켰다. 

 

썩어 없어지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죽음이라는 신의 공평한 정의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러기에 겸손해야 한다. 죽음이 없다면 새로운 삶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게 사멸이란 없다. 꽃과 나무는 시들어도 씨를 퍼뜨리고 열매를 맺으며 다음 생을 기약한다. 사람은 자식을 낳아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함으로 영생을 꿈꾼다. 천지의 큰 집에서 조화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길 수 있다면 그것이 천국이 아니겠는가! 

 

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신 위에서 화해하는 캐풀렛과 몬터규>(The Reconciliation of the Montagues and the Capulets over the Dead Bodies of Romeo and Juliet), 1850년경, 캔버스에 유화, 177.8x231.1cm, 개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