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퍼라!
오스카 와일드(1854~1900)
정열의 물결 따라 표류하던 내 영혼은
아무 바람이나 연주할 수 있는 풍명금 되었네
이런 결말을 위해 나 고대의 지혜도,
금욕적 삶도 모두 버리고서 여기까지 온 걸까?
내 삶은 두 번 겹 쓰인 두루마리와도 같아서
유년의 어느 휴일 위에 휘갈겨 쓴,
피리와 비를레를 위한 한가한 노래들도 이제는 영영
그 온전한 비밀을 알 수 없게 되었네
한때는 나 또한 분명히 햇살 비치는 하늘을
걸을 수도, 삶의 불협화음 사이에서
신에게 가닿을 또렷한 음을 연주할 수도 있었는데
그 시절은 죽은 걸까? 아아! 나는 작은 막대기로
로맨스의 꿀을 살짝 건드려보았을 뿐인데
그 대가로 영혼의 유산을 잃어야 하나?
Hélas!
Oscar Wilde(1854~1900)
To drift with every passion till my soul
Is a stringed lute on which can winds can play,
Is it for this that I have given away
Mine ancient wisdom and austere control?
Methinks my life is a twice-written scroll
Scrawled over on some boyish holiday
With idle songs for pipe and virelay,
Which do but mar the secret of the whole.
Surely there was a time I might have trod
The sunlit heights, and from life's dissonance
Struck one clear chord to reach the ears of God:
Is that time dead? lo! with a little rod
I did but touch the honey of romance -
And must I lose a soul's inheritance?
1. 『레딩 감옥의 노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는 극작가와 소설가로 큰 명성을 얻어가던 1891년, 39세의 나이에 친구의 소개로 당시 23세였던 앨프리드 더글러스를 만나 연인 사이가 되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했던 한 탐미주의자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미소년의 만남이었다. 더글러스는 오스카 와일드의 지성과 언변, 그와 함께 하는 사교 생활과 유흥에 매혹되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더글러스의 변덕과 사치, 제멋대로인 응석을 받아주었다. 19세기 영국의 고상한 취미는 소네트를 읽으며 희랍어를 배우고 고대 그리스의 헬레니즘적 문화를 탐닉하는 것이었다. 이성의 사랑이 탐욕이었다면 소년의 사랑은 숭고한 이상이었다. 기독교적 가치와 가부장적 규범이 엄연히 존재하였지만 한쪽에서는 나이 많은 남성이 어린 남성을 사랑하는 동성애적 문화가 공존하였다. 1895년 와일드는 남색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고 법정 최고형인 2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영국 남성 사회에 퍼져 있던 은밀한 문화의 도덕적 책임을 와일드 한 사람이 뒤집어썼던 것이다. 레딩 감옥에서 복역한 와일드는 1897년 출소하여 ‘C.3.3’라는 자신의 수인번호를 가명으로 『레딩 감옥의 노래(The Ballad of Reading Gaol)』라는 그의 마지막 시집을 출간했다.
2. Hélas! 슬퍼라
“Hélas!”는 불어로 “슬퍼라!” 정도의 감탄사다. 갈망과 열정이 이 감탄사에 응축되어 있다. 화자는 과거의 지혜와 자제력을 버리고 방탕한 삶을 살았던 것을 후회한다. 깨달음과 신의 인정을 갈망하면서도, 공허한 쾌락을 추구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낭비했던 순간을 두려워한다. 이 시는 현실의 날카로운 풍자나 재치보다는 자기 성찰, 후회의 어조가 만연하다. 와일드의 시는 대부분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실존적 불안과 환멸을 반영한 듯 우울증, 죽음, 사랑의 상실 등 꽤 어두운 주제들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시도 그러하다. 다만 소네트의 운율은 가볍고, 피리, 비를레, 불협화음 등의 음악적 요소가 시의 슬픈 분위기를 상쇄한다.
“한때는 나 또한 분명히 햇살 비치는 하늘을 걸을 수도, 삶의 불협화음 사이에서 신에게 가닿을 또렷한 음을 연주할 수도 있었는데 그 시절은 죽은 걸까?”를 노래하는 화자는 사랑의 상실을 넘어 신성한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과 욕구를 드러낸다. 삶은 두 번 겹쓰인 두루마리라고 했으니 영혼의 유산을 잃는 슬픔을 만회할 수 있을까? 허망한 줄 알면서도 세상에 순응하고 기대와 틀에 맞춰 살아가려 노력하는 뭇 군상들에게 와일드는 “슬퍼라!”를 내뱉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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