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극히 사소한 독서

발터 벤야민, 『고독의 이야기들』

by 하늘밑 2025. 8. 26.
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엘리 2025


1. 발터 벤야민과 아우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태계 언어철학자, 번역가로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손꼽힌다. 오늘날 영화, 사진, 신문, 라디오 등의 매체 연구에 있어서 벤야민을 빼고 논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파시즘의 부상, 자본주의의 확장, 기술 발전 등 격동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그의 역사철학, 언어관, 매체이론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유물론적 사유로 독자적인 철학 세계를 구축하여 유대 신학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좌파 아웃사이더’로 활약했다. 그가 1940년, 미국 망명에 실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발터 벤야민이 창안한 핵심 개념 중 하나가 ‘아우라(Aura)’다. 아우라는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 작품이 지닌 고유한 예술 작품으로서의 분위기와 생명력을 말한다. 그의 글 「너무나 가까운」을 읽으면 ‘아우라’가 무엇인지 손에 잡힐 듯하다. 대상을 너무 가까이 마주했을 때 생기는 역설적인 그리움은 이성적 설명보다는 한 편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이미지에 가깝다. 그런 것이 건축물이나 예술작품의 아우라일지 모르겠다.
 
꿈, 노트르담 성당 맞은편 센강 좌안. 그런데 거기 서서 아무리 바라보아도 노트르담 성당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웬 나무판자 잒으로 웬 벽돌 건물이 꼭대기 부분만 삐쭉 솟아 나와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노트르담 성당 바로 앞에 서 있을 때, 나를 압도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의 정체는 그리움이었다. 나는 파리를, 꿈 속의 내가 가 있던 바로 그곳을 그리워한 것이다. 그런 그리움은 왜 생기는 것일까? 내가 그리워한 대상은 왜 그렇게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던 것일까?
답 : 꿈에서 내가 그 대상에 너무 가까이 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때 처음으로 경험한 그리움, 아예 그름의 대상 안으로 들어가 있던 나를 엄습했던 그 그리움은,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데서 비롯되어 대상을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그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된 그리움이었다. 상상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의 문턱을 이미 넘어서 있는 그리움. 그런 그리움은 이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뿐이다. 그리운 사람은 이름 속에서 생명을 얻고 몸을 바꾸고 노인이 되고 청년이 된다. 이름 속에 형상이 깃든 그는 모든 형상의 피난처다.

「너무나 가까운」, p.51
 

 
오늘날은 기술 복제, 인공지능 대량 생산 등으로 예술작품은 원본성, 진품성, 일회성을 상실한 채 온갖 매체에 공짜로 범람하고 있다. 수많은 콘텐츠들이 아우라를 잃고 그저 물체로서 존재하는 현실이다. 이것이 꼭 나쁜 것인가? 발터 벤야민은 이런 아우라의 붕괴를 비판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사진이나 영상기술의 발달이 기존의 엄숙하고 종교적이었던 예술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복제하여 예술의 대중성을 이끌었다고 본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연구분야는 미학, 문학, 언어. 역사. 예술, 매체, 문화 등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2. 『고독의 이야기들』과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고독의 이야기들』은 발터 벤야민이 짧은 소설의 형식을 갖춰 집필한 유일한 문학 작품집이다. 대부분 미발표 원고들이다. 그의 비평서에 비해 문학작품들은 매우 실험적이다. 일기나 서평, 꿈과 설화, 소설과 논술 등 어떤 글은 시적이고, 어떤 글은 즉흥적이고, 어떤 글은 사유가 깊다. 1부의 꿈과 몽상에 대한 글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다. 책이 끝나는 부분에 편집자의 해제가 있는데 제목이 '발터 벤야민과 말장난의 흡입력'이라 재미있다. 벤야민이 살면서 다양한 문학 형식들을 실험했기 때문이다. 짧은 픽션, 덕담이나 비유, 농담, 수수께끼, 시구 등등이 그의 유명한 비평문들 곁에 놓여 있었다. 그의 관심사는 다양하여 실제로 벤야민이 오랫동안 범죄소설의 집필계획까지 세워 놓았었다고 한다. 『고독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한 편, 한 편이 모두 그의 비평작업에 필요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내 시선을 머물게 한 것은 글들보다 책 곳곳에 삽화로 실어놓은 파울 클레의 작품들이다. 발터벤야민은 파울클레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단순하고 유머러스하며 공상적인 클레의 그림에 벤야민은 이야기를 더해 활기를 불어넣었다. 『고독의 이야기들』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파울 쿨레의 작품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는 특히 그러하다. 1921년 발터 벤야민은 <새로운 천사>를 직접 구입했다. 이 그림은 그의 최고가 소유물이 되었다. 벤야민이 미국 망명길에 올라 좁혀오는 나치의 추적을 피해 스페인의 국경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이 그림을 품에 간직했다고 한다. 『고독의 이야기들』에는 파울 클레를 소개하며 발터 벤야민이 <새로운 천사>에 대해 평해놓은 글을 실어 놓았다. 이 그림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벤야민의 평생 친구인 게르솜 숄렘(1897-1982)의 손을 거쳐 현재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파울클레 새로운 천사 <Angelus Novus 앙헬루스 노부스 >, 31.8cm*24.2cm 1920 이스라엘박물관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라는 그림이 있다. 여기에 그려진 천사는 자기가 바라보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막 멀어지려고 하는 듯하다. 눈은 휘둥그레져 있고, 입은 쩍 벌어져 있고, 날개는 활짝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거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연속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의 연쇄인 데 비해 천사가 거기서 보는 것은 단 한 건의 재앙이다. 끝없이 쌓이고 쌓이는 재앙의 잔해가 천사의 발치까지 밀려온다, 천사는 그 자리에 남아 죽은 이들을 깨우고 부서진 것들을 고치고 싶었겠지만, 천국에서 불어 닥치는 폭풍이 너무 강한 탓에 날개가 폭풍에 떠밀려 더 이상 접히지 않는다. 이 폭풍이 미래를 등지고 있는 천사를 거센 힘으로 미래로 몰아넣는 동안, 천사는 재앙의 잔해가 하늘에 닿도록 쌓이는 모습을 내내 보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이 폭풍이다."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테제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