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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사소한 독서

정유정 『영원한 천국』

by 하늘밑 2025. 2. 20.

1. ‘정유정’이라는 세상
 
2011년 3월,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이 출간되었을 때 조선일보는 「‘3無 소설가’ 정유정 돌풍」이라는 글로 스타작가의 탄생을 예고했다. 정유정 작가가 명성도 없고, 정식 문학 공부를 한 적도 없으며, 전라도 함평 출신으로 수도권과의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듣보잡 작가가 쓴 『7년의 밤』에 대중은 열광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500쪽이 넘는 소설의 프롤로그 첫 문장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었다.”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만큼이나 파격적인 시작이었다. 정교한 취재를 기반으로 한 생생한 공간 재현은 리얼리티에 힘을 불어넣었고, 접속사 사용을 극도로 절제하며 호흡의 절주에 맞춰 휘몰아치듯 써 내려가는 힘 있는 문장은 압도적이다 못해 숨을 멎게 할 지경이었다. 소설은 작가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어 긴밀하고 촘촘한 서사구조 속에 어느 것 하나 버려지는 부분이 없었다. 역동적인 이야기에 생명력과 에너지를 불어넣는 원초적 동력은 정유정 작가의 성실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마도 몇 백번 자신의 소설을 갈아엎고 다시 썼으며 읽고 읽으며 퇴고했을 것이고, 머릿속에는 영화감독의 현장콘티처럼 장면을 쉼 없이 재구성하였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그녀의 세계에서 완벽한 세상이어야 했다. 오죽하면 작가가 “내 소설에는 파리하나 의미 없이 날아가지 않는다.”라고 했겠는가!
 
정유정 소설이 침잠하는 주제는 인간 본성의 어둠과 폭력성, 그에 맞서는 인간의 자유와 강인한 의지일 것이다. 나 같은 부류는 워낙 다층적인 인물 심리 묘사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스릴러적 구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정유정 소설을 읽으며 희열과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작가 특유의 강렬한 서사성과 뚜렷한 주제의식, 처절한 묘사로 인해 어떤 이들은 소설 읽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늘 땀 냄새와 피 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현실도 녹녹지 않은데 『7년의 밤』에 등장하는 ‘오영제’나 ‘최현수’같은 인물을 현실에서 맞닥뜨린다고 상상하며 독서를 한다면 마음이 결단코 편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7년의 밤』은 장동건과 류승룡이 나오는 영화로 만들어져 2018년 개봉했지만 원작의 매력과 미덕은 휘발되어 사라지고 남성들의 자기 연민과 과시적인 몸부림만 남은 그렇고 그런 영화가 되어버려 아쉬움을 더했다.
 
정유정 작가는 『7년의 밤』이후로 작품의 외연을 끊임없이 확대하였다. 연이어 쓴 두 편의 장편소설이 그러했다. 치사율 100% 전염병의 창궐이라는 국가적 재난 사태를 인간과 늑대개의 시점에서 그린 『28』은 인간의 폭력성을 가정사가 아닌 공권력의 집단적 배제와 폭력으로 확장시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종의 기원』은 소시오패스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등장시켜 치유불가능한 극단적 악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했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은 악의 3부작이라 불리며 정유정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각인시켰다.
 

작가 정유정 악의 3부작 소설들 은행나무 페이스북 제공


 2016년, 『종의 기원』 출간 즈음에 작가 강연회에서 정유정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독자와의 대화시간에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었던 내가 질문을 했었다.
 
“소설 『종의 기원』은 다른 소설에 비해 공간이 한정되어 있고 등장인물도 적어요. 스펙터클한 설정도 좀 아쉽고요. 마치 긴 시리즈의 시즌1처럼 느껴집니다. 영화 『한니발』이나 미드 『덱스터』도 악인의 등장을 알리는 프롤로그에 이어 여러 편의 영화나 긴 시리즈로 제작이 되었던 선례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종의 기원』의 후속작이 너무나 기대가 됩니다.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음 작품계획이 궁금합니다.”
 
정유정 작가는 말을 무척 아꼈다. 『종의 기원』에 자신이 에너지를 모두 썼다고 했다. 소설을 쓰는 내내 자신이 소시오패스가 된 것처럼 힘들었다고 했다. 후속작은 없을 것이고 다음에는 좀 더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작가 정유정이 직접 스케치한 소설 무대 군도신도시 지도. 정유정은 소설을 쓸 때 배경과 장면을 스케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은행나무 제공


 
2. 『영원한 천국』 성취의 욕망
 
2024년 8월, 드디어 정유정 작가의 또 다른 신작 『영원한 천국』이 출간 되었다.
 
“어마무시하게 돈이 많은 미국의 한 생명공학 회사가 인간이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는 거야. 아니다, 죽지 않은 게 아니지.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새로운 인종이 된다지, 아마. 뭐든 가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는데, 내 생각엔 그 정도면 신과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신이야. 아무튼 그 회사가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와 손을 잡고 신들이 거처할 세상을 만들었다 이거야. 부자도 없고, 가난한 자도 없고, 병든 자도 없는 세상.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영원한 천국.”
 
소설의 제목이 『영원한 지옥』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500쪽이 넘는 장편의 분량은 여전했지만 이 소설 또한 읽는데 며칠 걸리지 않았다. 소설가를 넘어선 이야기꾼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서사성이 두드러지는 강렬한 묘사, 독자가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실재감, 장르문학적 특징을 보여주는 주제의식과 소설적 리얼리티는 여전히 혀를 내두르게 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소설이 전보다 한결 밝아졌다는 사실이다. 찰지고 유머러스한 표현이 곳곳에 등장해 긴장감을 해소시키고 웃음을 유발했다. 조금은 철 지나고 식상해 보이는 관용구도 정겨웠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며 줄기차게 재기를 도모했다. 문제는 어머니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나를 살림 밑천으로 삼을 속셈이었다면 세뇌는 괜찮은 전략이었다. 공들이지 않고 최저가로 키운 장남이 월급쟁이가 되자 집안 형편이 펴기 시작했다.”
 
“내게 희망이란, 실체 없이 의미만 수십 개인 사기꾼의 언어가 되었다. 절망의 강도를 드러내는 표지기, 여섯 시간이며 약효가 사라지는 타이레놀, 반드시 그리되리라 믿고 싶은 자기 충족적 계시, 그 밖에 자기기만을 의미하는 모든 단어.”
 
“군청색 근무복 소매 위로 솟은 팔근육의 웅장함에는 지레 주눅이 들었다. 수수깡으로 패도 전치 4주는 나오겠다 싶은 팔뚝이었다.”
 
“우리에겐 개 발에 편자였다. 만만하게 다룰 수 있는 게 더 나았다. 마무리용으로 창고에 있던 밧줄 뭉치를 각자 주머니에 담았다.”
 
“그걸로 나랑 놀겠다고 칠렐레 팔렐레 뛰어왔어요?”
 
“그런데 이걸 어쩌냐. 요단강 건너가신 게 한 오백 년은 된 것 같은데.”
 
전 소설과 비교해 여전히 감출 수 없는 것은 10년 넘게 간호사 생활을 하며 체득한 인간 신체와 의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묘사의 핍진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돌연 갈비뼈 밑이 접혔다. 입이 벌어지고 목젖이 경련을 일으켰다. 배꼽 밑에선 방광이 수축을 일으켰다. 몸 안에서 두 개의 생체신호가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는 위장에서 식도로, 하나는 방광에서 요도로.”
 
“나는 또 응급실에 실려갔다. 이전과는 증세의 차원이 달랐다. 혈액 내 산소 수치의 저하로 입원을 해야 했다. 비침습성 보조 호흡기에서 목을 절개해 튜브를 꽂는 인공호흡기로 바꾸는 수술을 받았다. 덤으로 위에 관을 꽂아 음식을 넣어주는 위루술도 받았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마주하게 되는 놀라운 변화는 격랑에 휘말리는 인물의 핏물 흥건한 파국적 결말 대신에 소설 전반부와 후반부에 달달한 로맨스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문체는 훨씬 여유 있고 우아해졌다. 사랑스런 캐릭터가 등장했다. '공달'이라는 앵무새가 그랬고 제이나 랑이언니같은 풋풋한 인물이 그랬다. 극단의 긴장과 극단의 해방의 공존. 삼애원의 섬뜩한 유빙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썸니아'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공포스러웠지만 그 반대편에는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을 연상시키는 사막의 로맨스가 있었다. 소설 속 제이와 해상은 핏물 흥건한 세령호 주변이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화양시가 아닌 사막여우가 등장하는 신비의 바하리야 사막에서 사랑은 나눈다. 팀장과 직원으로 만난 경주와 지은의 심쿵스토리도 그렇다. 결핍과 단점이 많고 누군가를 사랑할 줄도, 마음에 들일 줄도 모르는 경주가 한 여인을 만나 목숨을 건 사랑을 시작한다.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쓰다니, 평소 영화를 안본다던 정유정 작가가 넷플릭스 연애 드라마에 빠진 건 아니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달달한 연애세포가 오감을 자극하였다. ‘첫눈이 내린 뺨’이나 ‘배꼽 밑에서 나비가 팔랑거렸다’는 농염한 표현까지. 긴장한 독자에게 주는 이런 달콤한 선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목에 팔을 걸고 냉큼 안겼다. 내 등을 단단하게 받쳐주는 그의 손을 느끼면서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이 사람이 정말로 내게 돌아왔구나. 그와 뺨을 맞대면서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정말로 나는 이 남자가 그리웠구나. 그가 등을 다독거리자 목 안에서 흐느낌이 북받쳤다. 나는 정말로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그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제이와 해상)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욕실에서 그녀가 두고 간 칫솔을 발견했다. 칫솔꽂이에 내 칫솔과 나란히 꽂혀 있었다. 불쑥 아침 햇살 속에 앉아 있던 그녀가 떠 올랐다. 화장실을 드나들 때, 식탁에 앉을 때, 자려고 누웠을 때 그녀의 첫눈 같은 뺨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 순간에 일어났던 내 안의 변화까지 어김없이 함께 왔다. 그때마다 배꼽 밑에서 나비가 팔랑거렸다.”(경주와 지은)
 
3. '롤라'라는 가상세계
 

"저는 원래도 소설을 쓸 때 공간을 하나하나 실제로 스케치하며 쓰는데요. 이번에도 각 공간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있는 방식 그대로 스케치북에 그려놨어요. 사실 소설에 표현된 것보다도 훨씬 더 디테일하게 그 공간을 설정해 두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있고, 그 위에 클라우드가 있고, 그 클라우드 안에 큰 차원의 가상세계와 롤라 극장이 있고, 그 안에 드림시어터가 있어요. 동심원처럼 층층이 그려놓고 각 층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다 적어 놓고 날마다 보면서 외웠어요. 그렇게 복잡한 공간들 사이의 관계가 정확히 파악이 되어야지만 소설을 쓸 때 편해요. 이 일이 어디서 일어났는지를 고민할 필요 없이, 탁탁 맞춰서 쓸 수 있거든요. 공간의 레이어가 많아져도 이야기가 흔들리지 않고 진행될 수 있는 거죠." (작가의 말) 

 
소설이 주된 배경과 소재는 인간의 의식을 데이터화한 가상의 세계 ‘롤라’이다. 작가가 유발 하리리의 『호모 데우스』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대목이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미래사회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고 과학기술이 마침내 인간에게 불멸을 선사한다는 오싹한 이야기이다. 현대사회의 문제적 상황을 미래의 가상세계로 확장하며 이야기는 힘 있게 질주하고 있었다. 아마도 전작인 『진이, 지니』에서 인간과 동물의 영혼이 공존하는 판타지 장르를 거쳐온 영향인 듯싶다. ‘롤라’라는 가상세계는 스마트폰 유심으로 죽어서 업로드되는 곳이다.  ‘롤라’ 속의 또 다른 가상세계인 ‘드림시어터’에 들어가면 원하는 대로 몇 번이고 삶을 재구성해 영원히 살 수 있다. ‘드림시어터’는 언제나 리셋이 가능한 가상세계의 맞춤형 인간극장인 샘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인간이 가상세계에서 서사놀이를 하며 긴 세월을 보내는 곳’이다. ‘드림시어터’에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심지어 다양한 생물의 모습으로도 살 수 있다. 그곳은 평화롭고 고통 없는 삶이 지속 가능한 영원한 천국이다. 작가는 여기서 질문한다.
 
“모두 평등하고, 뭐든 할 수 있고, 아무도 죽지 않는 세계, 영원한 천국에 산다면.....인간은 과연 평화로워질까? (중략) 그곳에서 인간은 어떤 삶을 추구할까?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추구할까. 욕망과 추구가 존재하기는 할까?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면 욕망할 대상도 추구할 가치도 없을 텐데, 욕망과 추구에서 벗어난다면 인간은 정말로 평화로워질까. 평화로운 삶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축복인지 저주인지를 받은 인류에게 마지막까지 남을 인간적 본성은 무엇일까.”
 
작가는 결국 데우스가 되어 영원한 천국에 살더라도 인간은 결국 자기 문제를 끌어안고 끙끙댈 존재라고, 욕망과 추구는 인간이 가진 특성이자 마지막으로 간직한 본성이라고 말한다. 소설 속 드림시어터의 설계를 담당한 해상에게 경주는 이렇게 말했다.
 
“해상씨가 내 미래를 설계하면 그게 곧 내운명이 됩니다. 내겐 해상씨가 신이나 다름없는 거고요. 그렇죠?”
 
“저쪽 세상에 살 때 나는 내가 누군지 안다고 생각했어요. 사는 게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살다 보면 나아질 거라 믿었고, 결국 그런 믿음은 허상이었어요. 내가 왜 사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 거죠.”
 
“나는 영원히 살고 싶어서 '롤라'에 온 게 아닙니다. 그저 도망친 겁니다. 그것도 아주 성급하게. 이곳에 와서야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 인생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이해할 만한 실마리라도 찾지 않았을까.”
 
경주는 해상에게 드림시어터에서 운명의 설계 없이 살아볼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였다. 내 삶은 설계하지 말고 백지로 놔두라고 말이다. 경주는 드림시어터에서 다시 롤라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는 ‘죽음’이라는 보장된 출구를 거부하였다. 해상은 프로그래밍되지 않는 삶은 스스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어서 자칫 가상의 세계가 지옥처럼 고통스러워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유령처럼 떠돌아다녀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마치 영화 『인셉션』에서 주인공이 현실이 아닌 꿈속의 세계에 갇혀 영원히 깨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경주는 고민하다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나는....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경주는 평화롭고 예측가능한 영원한 천국을 거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백지처럼 놔두길 원했다. 설계되지 않는 삶에 대한 욕망이다. 정유정 작가는 이 소설이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 욕망은 ‘야성’이며 우리의 유전자 속에서 태초부터 숨 쉬고 있다고 했다. 야성은 인간이 운명에 맞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역동적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가 불행이라도 말이다.
 
자신을 영원한 천국에 가두어 놓는다면 그 속에 살고 있는 나는 진정한 나 자신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영원한 천국은 영원한 지옥이 될 수 있다. 영원한 천국도 결국은 나의 선택에 다름 아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 김신이 그러지 않았던가? "너의 삶은 너의 선택만이 정답이다."라고. 우리는 죽어가지만 살아있고, 살아 있지만 죽어가는 존재이다. 인생은 죽음으로 가는 짧은 여정이다. 어쩌면 인생의 해답은 항암치료와 롤라행 유심을 거부하고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한 소설 속 랑이언니의 이 대사에 있을지 모르겠다.
 
“자기야, 삶이 소중한 건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야.”

 

영원한 천국, 정유정, 은행나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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