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영희 교수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조선일보 북스가 연재하는 「고전산책, 문학의 숲」에서였다. 주로 영미고전을 대상으로 주말마다 연재하였으며 짧은 글이었지만 읽을 때 지루하지 않고 무엇보다 고리타분한 작품설명이 아니라 삶이 묻어나는 진솔하고 단아한 글솜씨가 나를 매료시켰다. 그녀가 소개하는 책의 주인공이나 글귀는 늘 그녀 주변의 사건이나 사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장영희 교수에 대해 아는 것은 겨우 서강대영문학과 교수라는 정도였다. 나중에 그녀가 소아마비 때문에 평생 목발을 짚고 다닌다는 사실과 한국에서 알아주는 유능한 영문학자이며 컬럼리스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글에는 삶의 아름다움과 위트가 묻어있다. 글을 읽고 있으면 쓰리고 아픈 기억들, 푸념과 자조 속에 감사하지 못하고 지냈던 모습들, 찌들고 일그러져 있어서 버리고 싶은 마음들이 부끄럽게 떠오르며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왜 감사해야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 「내 생애 단 한 번」 은 샘터사에 발행한 장영희 교수의 대표적인 에세이집이다. 맛깔스럽고 솔직하며 따뜻한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3장에 나오는 ‘엄마의 눈물’이 특히 그랬다. 어린시절 소아마비에 걸린 딸아이를 학교에 등교시켜야 하는 어머니의 일상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글을 통해 울려온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녀는 어머니가 일찍 일어나 연탄재를 부수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어머니는 그녀의 다리에 혈액이 통하도록 두꺼운 솜을 넣은 바지를 입히고 학교가방을 챙기고 보조기를 신겨 미끄러질세라 연탄재 위를 종종 밟으며 그녀를 등에 업고 학교로 향했다. 요뇨증에 걸린 그녀를 위해 화장실에 가는 시간에 맞추어 두 시간에 한 번씩 학교를 오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짐이 두 배로 늘어났다. 걸핏하면 수술을 하고 두세 달씩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잦았다.
장영희 교수는 차가운 겨울날 등하교 길에 자기를 업은 어머니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보고 ‘어머니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가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줬다고 고백했다.
장영희 교수의 이런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그녀가 말하는 공간에 서서 그녀와 함께 생각하고 웃고 아파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애틋한 회상에 잠겨 뭉클하게 된다. 장영희 교수는 암투병 끝에 2009년, 57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를 살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어머니에게 남긴 글은 사망 직후 언론에 공개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나에게는 89세 어머니가 있다. 2년 전 뇌수술을 크게 받고 잠시 회복하는 듯 했지만 다시 재발하여 지금은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다. 몽롱한 의식만 남아 온몸은 전혀 움직임이 없다. 가끔 소리와 빛에 반응하실 뿐이다.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어머니의 머리와 볼에 나의 손을 대고 어머니 귀에 날씨를 비롯해 가족의 일상을 속삭인다. 그만 생을 놓으시면 더 평안하시련만 어머니는 이생에 무슨 여한이 아직 남았는지 무의식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삶이란 그런 것이리라. 붙들고 싶어도 붙들기 어렵고 놓고 싶어도 쉬이 놓기 어려운 것.
어머니는 지독히 자기 세계에 갇혀 살았던 분이셨다. 외골수였고 자존심이 강하셨다. 자식들에게는 기쁨을 주기보다 자신의 분노를 여과없이 쏟아부어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속은 철 모르는 소녀처럼 여렸다. 어머니는 열심히 교회에 다닌 분은 아니셨지만 늘 기도하셨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라고 못 박지 않으셨다. 대상은 늘 하늘이었고 “~~ 하게 해 주소서”라는 기도의 형식을 깔끔하게 지켜 문장을 외듯이 반복하셨다. 내용은 늘 자식과 손주들의 건강과 평안을 위한 것이었고 때로는 뉴스를 보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기도 하셨다. 군대 있을 때 어머니가 모나미 볼펜을 꾹 눌러 쓴 편지를 보내주셨었다. 한 때 우울증에 빠져 군대사진을 모두 불태웠는데 그 때 어머니의 편지도 함께 소각해 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어머니의 물품을 시간 날 때마다 정리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사용하겠다고 두고선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그릇이나 옷가지류를 보고 있으면 이게 뭐라고 좀 원없이 쓰기라도 하시지 하며 눈물이 핑돈다.
어머니가 살아있는 동안 부디 행복한 꿈만 꾸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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