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의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
물리학은 사전적으로 “물질의 물리적 성질과 그것이 나타내는 모든 현상,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리학은 인간의 냄새를 제거하거나 배재한 학문 같다. 물리학이 더 어려워진 이유는 20세기 이후 물리학의 혁명이라고 하는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부터다. DNA생물학이든 재료과학이든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원자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역학의 이해는 과학공부의 필수요건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양자역학의 세계라는 것이 질량과 중력, 가속도 같이 옛날 과학 교과서의 친숙한 어휘로 설명하는 고전 물리학과는 다르게 사람의 오감으로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기본적으로 원자와 그것을 이루는 입자,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다룬다. ‘양자’란 말 자체는 ‘superposition’, 즉 전자 입자가 동시에 두 가지 상태에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완벽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여기 있으면서 저기 있고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고정화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빛의 입자가 파동처럼 변한다는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듣고 있으면 하도 들어서 그렇구나 싶지 이해가능한 물리법칙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오죽하면 리처드 파인만이 “그 어느 누구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무방하다.”라는 말을 했을까. 이런 양자역학의 세계는 다 알지 못해도 적어도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사실 알고 보면 스마트폰 반도체, 다이오드, 디스플레이, 태양광, TV 액정, MRI 등 수많은 회로로 이루어진 현대사회의 문명이 다 양자역학의 영역이 아닌가!

“진동은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리현상이다. 공학적으로도 많은 중요한 응용을 갖는다. 따지고 보면 전자공학의 절반 이상은 진동과 관련된다. 이공계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의 대부분이 진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동은 떨림이다. 비슷한 말이지만 그 느낌은 다르다. 진동은 차갑지만, 떨림은 설렌다. 진동은 기계적이지만 떨림은 인간적이다.”
이 책의 미덕은 물리의 세계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는 데 있다. 물리를 배우기 위해 인간적인 감정을 버려야 한다면 이 책은 물리를 통해 인간을 볼 수 있게 하고자 무진 애를 쓴다. 대학으로 치면 신입생을 위한 물리학개론 수업정도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나란 존재를 이루는 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나와 타자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엄밀한 과학이 아니라 다정한 물리 세계의 언어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해 준다. 물리적인 ‘진동’을 인간적인 ‘떨림’으로 읽어낼 수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이미 절반 정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원자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존재의 의미가 허무해지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경이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물리학자의 눈에 비친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드는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너무 슬플 때는 우리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었음을 떠올려보라. 그의 몸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일부분이 될 테니까. 모든 것이 원자의 일이라는 말에 허무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이 모든 일은 사실 원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오른손 집게 손가락 끝에 있는 탄소 원자 하나는 먼 옛날 우주 어느 별 내부의 핵융합반응에서 만들어졌다. 그 탄소는 우주를 떠돌다가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지구에 내려앉아, 시아노박테리아, 이산화탄소, 삼엽충, 트리케라톱스, 원시고래, 사과를 거쳐 내 몸에 들어와 포도당의 일부로 몸속을 떠돌다, 손가락에 난 상처를 메우려 DNA의 정보를 단백질로 만드는 과정에서 피부 세포의 일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원자 하나에서 우주를 느낀다.”
“우주에는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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