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이 혼란에 저항하라
기술...세상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경험의 필요성을 없애는 재주 - 막스 프리슈,『호모파버』
크리스틴 로젠은 책 『경험의 멸종』은 인간의 직접 경험이 소멸해 가는 21세기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대중문화, 과학, 정치, 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만의 대면 소통, 손으로 쓰고 그리는 경험, 기다림의 순간, 감정과 쾌락, 공공성에 대한 감각 같은 직접적인 경험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기술문명 즉, 컴퓨터, 스마트폰, 스마트 스피커, 웨어러블 기기, 테이터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인터넷 플랫폼, 챗GPT 등의 인공지능은 굳이 사람 간의 상호작용 없이도 새롭고 편리한 경험을 얼마든지 제공한다. 불편함은 점점 사라지지만 그것과 함께 인간다운 경험도 사라지고 마침내 불편함이 사라진 공간에는 모든 삶의 능력을 기술에 맡겨 버린, 텅 빈 인간만이 존재하게 된다. 현실과 비현실, 가상과 실제, 진실과 거짓의 구별이 사라지고 심각한 경우에는 가치중립적이라고 믿었던 플랫폼들이 정치적 양극화와 증오, 폭력을 선동하기도 한다. 우리가 신봉하는 기술은 이미 인간에게만 있는 경험과 가치를 삭제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책을 읽지 않고 기기에게 요약해 달라고 하는 일은 독서의 종말을, 문서 작성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일은 생각의 종말을, 지시어만을 입력해 그림을 얻는 일은 창작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의 영역이라고 불렀던 모든 경험을 기술에 맡기게 된다면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작가가 말하는 해결책은 기술문명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안하는 극단적인 변혁프로그램에 한계를 두는 것이다. 혁신적인 기술은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성의 한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기술의 진보가 역사의 진보가 아니며 모든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에 대한 개선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역사를 공부했고 수십 년간 기술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글을 써 왔다.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처럼 여전히 매개된 경험과 매개되지 않는 경험 사이에서 어떻게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다른 사람의 눈보다 화면을 바라본 시간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한다. 이런 고민은 반기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기술에 의해 계속 변하고 재편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기술적 가치와 지식 흡수의 방식에 대체되고 사라지는 것을 마냥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경험의 소멸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선택이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은 양면적이다. 역사학자 루이스 멈퍼드가 그의 저서 『기술과 문명』에서 언급했듯이 기술은 해방의 도구이자 억압의 도구다. 건전하지 못한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대면 상호작용에 참여하고, 공적 공간에서 다른 사람을 더 주의 깊게 살피고 배려하며, 스마트폰 사용을 최소화할 것을 권장하는 공적 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자신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더 잘 파악하고 온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볼 때의 기회비용을 고민해야 한다. 즉각적인 만족에 대한 욕구를 억제해야 한다. 더 건전한 공동체로 이어지는 미덕과 관행을 되살려야 한다.”
이 책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육신이 있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모순적이지만 기발하고 재미있고 창의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이 없다면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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