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사람은 죽음도 그 무엇도 두렵지 않네.
물방울이 바다에 떨어지기를 두려워하던가?"
* 이 책은 시대의 이단아였던 철학자 스피노자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고 자란 그가 어떻게 신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가게 되었을까? 연이은 전쟁으로 불안과 공포에 떨던 17세기 네덜란드,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정치와 종교에 사로잡혀 스스로 마음속에 감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그 ‘죽은 마음’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신에 대한 지적사랑, 우리 주변 모든 곳에 존재하는 자연이라는 유일한 진리에 대한 애정,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는 곧은 관점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긍정. 이 책을 통해 전해지는 스피노자의 이러한 부분은 몇백 년이 지난 지금도 삶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스피노자라는 이름은 그가 죽은 후 19세기가 될 때까지 '위험한 무신론자'들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 스피노자는 계몽의 선구자이자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또 그의 사상은 교회와 시나고그를 넘어서 최상의 신성을 향한 믿음의 초석과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 이 책의 미덕은 책의 앞부분 이 책을 감수한 서동욱 교수(서강대 철학과)와 책을 소개하는 독일의 역사학자 필리프 블롬(Philipp Blom)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야만에 맞선 철학자, 스피노자
나는 철학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늘 스피노자를 감탄과 놀라움의 감정 속에 읽어왔다. 도저히 한 사람이 겪고 지나간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그의 생애 역시 위대한 도전으로서 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진리 대신 비합리적 권위가 지배하는 공동체로부터의 추방, 별다른 소유물이 없는 검소한 삶, 이성적 질서의 유지, 평정한 마음 등으로 짜인 스피노자의 한평생은 경탄과 존경의 대상이지만, 감히 누군가에게 본받으라고 권유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작품'이다. '한 인생'이라는 이 작품은, 보수적인 정치 세력과 종교가 온갖 억압적인 협박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는데 맞서서, 진리를 합리적 정신 아래 보호하는 데 온전히 바쳐지고 있다. 이런 인생이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정말 실존했던 한 사람의 것이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아찔한 낭떠러지를 바라보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스피노자가 태어난 17세기의 네덜란드는 호전적이며 보수적인 왕정의 옹호자들과 그 왕정 과 결탁하는 미신적이고 권위적인 종교인들, 그리고 이에 맞서는 근대적 합리성의 정신들과 공화주의자들의 싸움터였다. 이 싸움이라는 표현은 그저 의회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말싸움을 가리키는 은유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왕정과 종교적 권위의 옹호자들은 공화정을 이끌던 재상 요한 드 비트와 그의 형제를 길거리에서 학살하고 그 시체를 발가벗겨 갈기갈기 찢었다. 도둑이나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아니라 매일매일 예배를 올 리는 일반 시민들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서 있었던가?
“극악무도한 야만!(ultimi barbarorum)”
이 싸움터에서 스피노자는 분노하지도 비탄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기하학자가 도형을 바라보듯 왜곡된 사람들의 심성을 합리적으로 연구하려고 했다. 사람들은 왜 근거 없는 정치적 종교적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것인 양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 싸우고, 군주나 성직자 한 사람의 허영을 위해 피와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수치가 아니라 최고의 영예라 믿는 것일까? 인류의 가슴속에 이런 '죽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기에 바로 권위의 우두머리인 왕들과 성직자들이 인간을 손쉽게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인류의 이 깊은 병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스피노자는 자연 안에 있는 합리적 인과 법칙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을 신의 접별 같은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명령으로 오해하고 무서워하는 인간의 몽매한 '상상이 인간 스스로를 옭아매는 정신의 감옥을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이 몽매한 이상 그는 합리적 법 최 대신에 미신적인 견해에 귀 기울이며 공포 속에서 그에 굴종한다. 그리고 정치가들은 이 공포를 이용해 사람들을 자기 아래 복종시킨다.
스피노자는 정치가들과 종교인들이 접주기 위해 이용하는 이 미신의 정체를 밝혀내고, 이 미신의 배후에서 우리에게 자연의 합리적인 원리를 이해할 것을 권유한다. 이것은 가짜 마 법사를 과학의 힘으로 내쫓는 퇴마술과도 같은 것이며, 잘못 보는 우리 눈의 시력을 교정 하기 위해 렌즈를 깎는 작업과도 같은 것이다.
스피노자의 책들을 통해 전해지는 이 시력 교정 프로그램은 한낱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 가 아니라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당신의 삶을 돌아보라. 세상사에 도전하기 어렵게 만드는 얼마나 많은 허황된 겁주기, 근거 없는 권위들, 늘 잘못을 추궁하며 마음을 감옥으로 만드는 죄의식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가? 마음을 갉아먹는 두려움 속에서 혼자 괴로워하기를 그치고, 분노 속에서 한탄하고 저주하기를 그치고, 당신이 당신 내면에서 스스로를 죽이는 깊은 병의 ‘원인’과 ‘결과’를 찬찬히 관찰하고 치유하려고 할 때 이미 당신은 스피노자주의자이다. “눈물 흘리지 마라, 화내지 마라, 이해하라.”
스피노자의 책들은 그의 평정심을 반영하는 것처럼, 또는 기하학적 도형을 지나가는 엄밀 한 선들처럼 감정 없는 문체로 쓰여 있다. 특별한 감정 없는 그 평온한 문체를 우리는 오늘날 남아있는 그의 초상화 속에서도 발견한다. 정치와 종교의 뿌리를 흔들리게 하는 저 놀 라운 책들을 쓴 젊은이는 초상화 속에서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은 채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듯 고요한 마음을 얼굴에 담고 있다. 스피노자와 동향의 일러스트레이터 야론 베이커스의 펜 끝에서 살아나는 이 책의 스피노자와 17세기의 네덜란드 역시 그런 평온한 얼굴이 다. 이 책은 전기적•철학적 측면의 각색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그래픽노블에 가깝지만, 여전히 스피노자의 정신을 담아내고 있는 드라마이다. 그러니 화가의 펜 끝에서 생겨난 이 평온한 선 밑에서 들끓는 불길을 보아야 한다. 그 불길은 바로 스피노자가 한번 체험하고 지나간 우리 자신의 삶이고 고통이다.
서동욱(서강대 철학과 교수)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신의 완벽함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던 한 철학자가 라틴어로 쓴 책이 어떻게 오늘날 까지도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가 했던 질문에서 누구도 자유로올 수 없습니다. 오늘 날 다른 많은 질문이 우리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신의 존재, 죽음에 대한 의문들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질문들입니다.
여러분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집과 가족을 버릴 수 있으십니까? 과연 그 럴 수 있을까요? 스피노자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추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혁명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지성과 학문을 추구하기 위한 언어로써 라틴어를 택하였고, 철학에 대한 전율을 느끼며 집을 떠났습니다. 이 책을 보면 바루흐 벤토 베네딕투스 스피노자는 어려운 결정들을 직면한, 실제적인 피와 살이 있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우리로 하여금 철학이 단순히 이론에 불과한 게 아니라 실제적인 인간들의 삶과 생활, 경험에서 나온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스피노자가 쓴 글은 신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카모플라쥬( camouflage 위장)입니다. 스피노자는 완벽한 신이 세상을 창조하였다면 세상 또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완벽한 존재가 불완전한 것을 창조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완벽하다면,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며 신이 개입할 수 없습니다. 기적 또한 존재할 수 없고, 기도 또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란 건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연법칙을 말하는 또 다른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건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남겨진 숙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신도, 우리 뒤에 숨어 있는 자도 없습니다. 좋은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그러면 삶을 즐기싶시오. 그리고 다른 이들이 삶을 즐기는 걸 도와주십시오. 사람이 잠재력이 있게 삶을 살아가는데 이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이 책은 독자들이 더 깊고 풍부하게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스피노자가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무지에는 용서가 없다(gmorantia non est argumentum).“
필리프 블롬 Philipp Blom

'극히 사소한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 생에 단 한 번 (2) | 2024.12.27 |
|---|---|
|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1) | 2024.12.26 |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1) | 2024.12.23 |
| 교회의 존재의미 "초대 교회사 다시읽기" (5) | 2024.12.12 |
| 니체 "안티크리스트" (0) | 2024.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