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하는 우아한 인생
* 삽질-하다
발음 [삽찔하다]
1. 삽으로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다.
2. (속되게) 헛된 일을 하다. 별 성과가 없이 삽으로 땅만 힘들게 팠다는 데서 유래한다.
1. 「롤링 선더 러브」
김기태의 「롤링 선더 러브」를 읽고 나서 궁금했다.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을까? 소설에서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우선 두 개의 노래가 떠올랐다. 첫 번째는 아델(Adele)이 부른 “Rolling in the Deep”이란 노래. 노래의 가사는 이별의 아픔과 배신을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 ‘Rolling’은 마음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말한다. 또 하나의 노래는 소설에서도 나왔는데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가 부른 ‘Sweet Child O' Mine’이다. 이 노래는 인상적인 일렉기타의 독주로 시작하는 명곡이다. 노래 가사에 “천둥과 비가 조용히 지나가길 기도한다(pray for the thunder and the rain to quietly pass me by)”가 있다. 여기서 ‘Thunder’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 소설 제목의 또 다른 부분인 ‘러브’는? 소설의 주된 배경이 <솔로농장>이라는 짝짓기 예능프로그램이니 ‘러브’가 왜 들어갔는지 어럽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2022년에 개봉한 허리우드 마블영화 『토르』의 부제는 『토르: 러브 앤 선더』였다. 토르는 천둥의 신으로 망치인 묠니르를 휘두르면 망치에서 번개가 나간다. 영화는 토르가 사랑하는 여인 ‘제인’을 만나 악의 신 ‘고르’를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결국 두 개의 노래와 한 개의 영화를 접목하고서야 소설의 제목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스타디움에 번개를 내리꽂는 록스타처럼, 왼손으로 자루를 받쳐 잡고 오른손으로 삽날을 긁었다. 오늘은 호랑이에게만 들리는 기타 솔로. 제목을 붙인다면 롤링, 롤링 선더......!”
소설 주인공 맹희는 소설의 말미에 <솔로농장> 출연자의 사은품인 삽자루를 들고 록스타처럼 노래를 불렀다. ‘사랑이라면 삽질을 하다 내 발등을 찍지만 얕본다면 당신 정수리를 찍을 거야’ 섬광처럼 번쩍이는, 마음 깊이 사무치는, 그러나 외롭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다. ‘러브’가 들어갈 ‘롤링 선더’ 다음 자리는 말줄임표로 비어있다. ‘사랑’은 선택이란 말이다. 이 소설은 내가 보기에 맹희라는 한 여인의 ‘삽질하는 역사’라고 볼 수 있다.
2. 맹희의 블로그
“나 조맹희. 37세 독신.” 소설의 주인공 맹희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자아를 탐색한다. 맹희는 나이가 들어도 나다움을 지키고 싶었다. 오랜 시간 ‘맹이의 대모험’이라는 블로그 포스팅을 해왔다. ‘대모험’이란 말이 무색하게 포스팅은 즉흥적이고 간헐적인, 그 흔한 서사마저 전무한 몸부림 같은 언어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여름, 재즈. 당신, 그리고 아이스크림. 달다아아아아아아!” 이런 식이다. 이런 글에 댓글을 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맹희의 자평에 의하면 자신의 블로그는 ‘고대의 맹희가 건축하고 현대의 맹희가 낙서하는 사적인 유적지’에 불과하다. 본인이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의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라고나 할까. 맹희는 어찌 보면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맹희는 스무 살에 상경한 이래 혼자 잘 살았다. 두부를 데쳤고 욕실 세정제를 뿌렸고 삼단 빨래 건조대를 조립했다. 지방세를 납부했으며 플라스틱 용기와 유리병의 라벨을 드라이어로 녹여 떼서 수요일과 금요일에 내놓았다. 동네 순댓국집은 혼자 가도 물론 맛있었다.”
어느 날 맹희는 중얼거렸다. “아 근데, 나는 사랑이 좀 하고 싶다.” 그리고 결심했다. 새로운 사랑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수도 있겠다고. 맹희의 삽질이 시작되었다.
3. 완두와 <솔로농장>
맹희는 ‘완두’라는 낯선 이름으로 짝짓기 연애 프로그램인 <솔로농장>에 출연한다. 출연자들 모두는 과일과 야채 이름으로 불렸다. 맹희는 완두보다 양파나 토마토가 좋았다. ‘그런 사람에게 그런 이름이 붙는 건지, 그런 이름이 붙어서 그런 사람이 되는 건지’ 고민했지만 맹희는 그렇게 완두가 되었다. 맹희는 <솔로농장> 촬영 현장에서 자신의 사회적 배경을 제외한 특성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며 잊고 있던 자신의 성격과 개성을 돌아보게 되었다. 자신이 출연한 <솔로농장>을 TV로 보며 맹희는 생각했다.
“저게 나인가. 아니지. 저것도 나인가. 그건 맞지. 완두는 맹희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일부이긴 했다. 나 생각보다 관종이었을지도.”
맹희의 재발견은 4회 스페셜 데이트권 미션에서였다. 수레에서 쏟아진 거름을 삽이 아니라 손으로 다 쓸어 담았다. 턱이며 팔뚝이며 무릎에 거름이 잔뜩 묻었다. 데이트권을 얻은 맹희는 등산 데이트에서 상대를 지목하지 않고 홀로 산행을 결정했다. 맹희의 마음속 선택은 그녀의 곁에서 담당 카메라를 찍은 우엉피디였다. 일탈이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소심한 삽질이었다.
4. 홀로 된다는 것은
고딩 때 라디오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가 있었다. 나중에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변진섭’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목이 ‘홀로 된다는 것’이었다. 가사의 끝이 이랬다.
“♬지난날들을 되새기며 수많은 추억을 헤이며 길고 긴 밤을 새워야지 나의 외로움 달래야지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은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
혼자있으면 좋기만 하던데. 홀로 된다는 것이 외로움인지 고독인지도 모를, 지난날을 되새기기에도, 수많은 추억을 떠올리기에도 경험이 일천했던 학창 시절. 홀로 된다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변진섭을 슬프게 하는 ‘홀로 된다’는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움이 아닐까 싶었다.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같이 있으면 금세 싫증이 나고 피곤해진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고독만큼 편안한 친구를 만나보지 못했다. 우리는 대체로 방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더 고독하다. 고독은 나와 동료들 사이의 거리로는 측정되지 않는다. 벌통 같은 하버드대학의 강의실에서도 정말로 부지런한 학생은 사막의 수도승만큼이나 고독한 법이다.”
소로의 말대로라면 나는 혼자인 적이 없었다. 나 자신은 나의 가장 큰 친구였다. 가끔씩 만나는 친구는 단비처럼 반가운 존재였다. 없다고 칭얼댈 일은 아니었다. 나를 둘러싼 자연은 또 어떤가? 인간은 부분적으로 식물의 부식토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서정윤의 시 “둘이 만나서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것이다.”를 읊조리면서. 하나님은 혼자다. 악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늘 패거리를 거느리고 다닌다. 하루살이는 떼지어 몰려다닌다. 독수리는 홀로 창공을 누빈다. 친하다고 서로 밀집하여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고, 존경심은 사라지며 상대에 대한 서로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 인생은 결국 혼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5. 맹신과 망신사이
맹희는 친구 리아와 대화하며 ‘혼자됨’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혼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둘이서 행복할 수는 없다’는 말에 동의했다.
“혼자가 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멀리 떠났다가도 돌아와 몸을 눕히게 되는 침대처럼, 있는 힘껏 뛰어올라도 바닥으로 끌어내리고야 마는 중력처럼 혼자됨이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나. 이미 혼자인데 더 어떻게 혼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떤 혼자는 다른 혼자보다 더 완성된 것일까.”
‘시원하게 굴러보고 싶다’던 맹희는 결국 자신의 외로움은 본인의 몫이란 것을. 때론 자신이 얼마나 많은 용기와 노력을 투자했는지와 결과가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맹희는 시원하게 삽질하며 굴렀지만 부서지진 않았다. 그래서 블로그의 이름을 ‘돌멩이 대모험’으로 바꾸었다. 더 단단해졌다. 여기저기 부딪힌 모난 돌이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가기로 소박한 결정을 내렸다.
“전철역을 나서고도 집에 가지 않고 산책하는 날들. 노점에서 굽는 붕어빵 냄새.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의 발걸음. 전통 킥보드에 올라탄 여중생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은총처럼 빛나는 저녁이 많아졌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6. 순수함의 미덕
소설 속 맹희는 참 순수한 캐릭터다. 공연한 ‘삽질’을 마다하지 않고 용감하게 뛰어든다. 거침없는 입담은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찰지다. 악랄한 댓글에는 익명으로 ‘너네는 어쩌다 이렇게 좆같아졌어?’라고 달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할 용기도 없는 놈들!”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에는 솔직하고 순수하다. <솔로농장>의 출연자 순무와의 연애가 자신이 기대하던 만큼의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을 때, 커피숍에서 담백하게 이별하고 돌아오며 15&의 「사랑은 미친짓」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외투를 옷걸이에 단정하게 건 뒤 애착인형인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이듯 말한다. “사랑하고 왔다.” 맹희는 자신의 ‘삽질’을 관조하며 절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속이 단단해졌다.
사실 우리는 소설 속 맹희 만큼이나 순수함을 유지할 용기가 없다. 사랑할 시기를 놓쳤다는 사회의 시선, 연애 프로그램은 미친 사람들이나 나가는 것이라는 주위의 호된 질타도 맹희를 막을 순 없었다. 순수함이란 열정이고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순수함을 잃으면 자신을 잃는 것이다. 순수함의 미덕은 자신의 삶을 순수하게 살아내는 것에 있다. 인생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꽃이 진다고 바람만 탓할 수는 없는 일. 소설은 맹희의 지난한 ‘삽질’의 역사를 질펀하게 전개하다가 마침내 소설의 끝에서 삽자루를 들고 삽날을 긁으며, 춤을 추고 노래하는 맹희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삽질도 해 본 사람이나 할 수 있다. 소설의 그런 결말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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