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를 읽고
"유홍준처럼 입심 좋고 솜씨 좋고 먹성 좋고 눈썰미 사납고 꽤나 극성맞기도 한 연구자 겸 평론가를 만난 것은 여간한 복이 아니다"(백낙청)
"나는 한때 유홍준의 신도였다. 유홍준이 보라는 대로 보고, 유홍준이 아름답다는 대로 아름다움을 느끼려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유홍준의 신도가 아니다. 이제는 내 시각대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유홍준이 시키는 대로 해봤기 때문에 내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박완서)
"가볼 수 없는 곳을 가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기쁨, 찾아보고 싶은 곳을 막 다녀온 것처럼 느끼게 하는 기쁨, 막연한 역사가 문화유산을 통해 살아나는 듯한 기쁨, 책을 통해 본 세상에 머물지 않고 문 열고 나가 역사에 참여해보고 싶은 욕구와 기쁨. 그래서 전 이 책이 좋아요."(김제동)
1. 유홍준이라는 이야기꾼
유홍준 선생의 책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를 단번에 읽었다. 이 책의 부록을 보면 우리나라에 ‘3대 구라’가 있다고 한다. ‘3대 구라’는 1970년, 80년대 재야인사와 문화예술인들이 민주화 투쟁을 거치며 술자리의 이야기꾼으로 좌판을 휘어잡던 사람들이다. 방동규 선생과 백기완, 황석영 선생이 '3대구라'였다. 이들을 이어 등장한 것이 ‘3대 교육방송’이다. 한마디로 ‘유익한 말씀’으로 컬러 TV 시대를 주름잡은 문화계의 소문난 이야기꾼이었으니 이어령, 김용옥 선생,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이 유홍준 선생이다.

유홍준 선생은 그야말로 ‘황홀한 말발’을 자랑하는 분이지만 글도 말 못지않게 황홀하다. 빨리 쓰고, 많이 쓰고, 정확하게 쓰고, 심지어 잘 쓴다. 선생의 대표작은 ‘학삐리’와 ‘딴따라’의 절묘한 조합이라 칭찬받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지만 『완당평전』은 꼭 읽어야 할 선생의 또 다른 역작이다. 이런 책 외에 선생이 발표한 다양한 종류의 글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다. 신문 기고는 기본, 각종 전시회의 발문이나 논문, 에세이를 비롯해 다양한 강연의 초고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방대한 글발이다. 최근에는 TV의 문화강연프로그램에 나와서 해박한 지식과 입담, 겸손하고 넉넉한 웃음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선생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방대한 인맥과 정확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한 살아있는 에피소드가 전율을 느끼게 한다. 선생에게는 역사 속의 인물과 사건을 생생하게 재현해 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는 1970년대에서 2020년대까지 그가 만나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명인들로 아픈 질곡을 겪으며 세상을 떠났다. 리영희. 백기완, 김지하, 신영복, 이애주, 오윤, 김가진, 신학철, 박형선, 홍세화 김민기 등등....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뜨거워지는 분들이다. 이분들 모두는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분들이었으니 책을 읽는 나의 감회는 더 새로울 수밖에 없다.

2. 유홍준의 글쓰기
“좋은 글이란 쉽고, 짧고, 간단하고, 재미있는 글입니다. 멋 내려고 묘한 형용사 찾아 넣지 마십시오. 글맛은 저절로 우러나는 것입니다.”
유홍준 선생이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출간 20주년을 기념하는 강연 자리에서 한 말이다. 선생은 최근 펴낸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서 자신의 글쓰기를 이렇게 결론 내려 제시하였다.
“대중적 글쓰기라고 해서 전문성이 약하면 안 된다. 전문성이 떨어지면 내용이 가벼워 글의 격이 낮아진다. 전문적인 내용을 대중도 알아듣게 하는 것이 진정한 대중성이다.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쓰는 것이 대중적 글쓰기이다. 그래서 글쓰기의 진정한 프로는 쉽고, 짧고, 간단하게 쓸 줄 안다. 그러나 내용은 내용대로 충실히 갖추어야 한다.”
글쓰기 관련 내용은 선생이 지난 2013년 『중앙선데이』에 ‘유홍준의 대중적 글쓰기 15가지 도움말’을 고치고 보완하여 ‘좋은 글쓰기를 위한 15가지 조언’이란 제목으로 정리한 것이다.
1. 주제를 장악하라
주제가 명확하지 않으면 글이 흔들린다. 제목만으로 그 주제를 전달할 수 있을 때 좋은 글이 된다.
2. 잠정적 독자를 상정하라
글은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독자는 글을 읽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독자는 일단 성실하게 읽는다. 그러니 독자는 언제고 글이 시시하면 읽다가 말 수 있다. 독자를 가르치려들지 말고 독자에게 호소해야 한다. 독자 앞에 겸손해야 한다.
3. 기승전결을 갖추고, 유도동기를 활용하라.
글의 짜임새를 생각하고 독자를 계속 끌고 갈 유도동기가 무엇인지 고려한다. 유도동기는 오페라나 교향시에서 일정한 곡조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을 말한다. ‘지루한 웅변’은 금물이다.
4. 에피소도로 생동감을 불어넣어라
글을 쓰면서 그 주제에 맞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그 글은 무조건 성공한다.
5. 이미지를 차용하라
누구나 글을 쓰면서 가장 애태우는 것 중 하나는 어휘력의 부족이다. 형용사와 부사만으로는 부족한다. 기쁨이나 아쉬움, 대상에 대한 인식이나 감정을 독자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대신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예) 솔밭과 산새가 사라진 만덕산의 봄, 그것은 마치 외할머니 돌아가신 외갓집을 찾는 듯한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중』
6. 유머를 적절히 구사하라
유머는 글의 재미와 멋을 살려준다. 유머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글이 전개되는 상황과 긴밀히 맞물릴 때 효과가 있다.
7. 은유를 음미하게 하라.
문장 속에 은유와 상징이 함축될 때 독자들의 사색을 일으킨다. 설명이 아니라 글의 행간에 서린 의미를 음미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때 좋은 문장이 나온다.
8. 비판하려면 문학적 수사를 동원하라.
나는 아둔한 현실에 대한 직설적 비판으로 명예훼손이나 고소를 당하고 개인적으로 사과한 일도 있었다. 문학적 수사를 동원하여 불특정 다수를 비판한 경우는 좋은 유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9. 인용으로 내용을 보강하라.
내용이 정확하고 충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이 인용이다. 다양한 책과 글에서 인용을 하면 주장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고 동시에 독자를 미학적 사고로 이끄는 효과를 일으킨다.
10. 각 문체의 특징을 파악하라.
간결체, 화려체, 서사체 등 문체의 여러 가지 특징을 파악하여 글쓰기에 반영한다.
11. 구어체의 글맛을 살려라
글은 문법에 맞아야 한다. 그러나 언어는 생활 속의 관습이기 때문에 바뀐다. 문법에 얽매이면 글맛이 사라질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글맛을 내기 위해 구어체를 사용해 볼 수 있다.
12. 접속사를 절제하고 ‘의’를 활용하라
접속사를 자주 쓰면 글에 백이 빠지기 쉽다. 글은 문장의 논리로 이어져야 힘을 받는다. 앞 문장의 핵심적 단어를 이끌어 다음 문장의 주어로 연결하는 것도 방법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의’를 활용해 붙여라.
예) 단원 김홍도가 단양팔경의 하나로 그린 <옥순봉도> → 단원 김홍도의 <옥순봉도>
13. 글의 길이에 문체와 구성을 맞춰라
글의 길이에 따라 문체도 달라야 하고 구성도 달라야 한다. 짧은 글은 단문으로 이어가고 중간 길이의 글은 문단은 4~5개 토막으로 나누어야 한다. 긴 글의 문장은 긴 호흡으로 써야 한다. 중간중간 에피소드나 사례, 또는 인용문을 적당히 배치해야 글에 활력이 생긴다.
14. 문장의 리듬을 생각하며 윤문하라
윤문은 독자의 입장에서 해야 한다. 문장이 읽기 편하려면 글 전체에 리듬이 있어야 한다. 독자는 한 문장도 두세 번은 끊어 읽는 것이 보통이니 거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부사, 강조어의 위치를 잘 잡고 때로는 주어 앞에 놓아 강조할 수도 있다.
15.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점검하라
글을 다 쓰고 나면 바로 완성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묵혀둔 다음에 다시 읽고 객관적으로 검토한 뒤에 완성한다. 글이란 자기 논리가 있기 때문에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성질이 있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읽어보면 독자의 생리에 따라 걸리는 부분이 드러난다. 친구나 동료에게 미리 읽혀보고 조언을 듣는 것도 좋다.
선생은 글쓰기 조언 마지막에 당송 팔대가 중 하나인 한유(韓愈)의 「양양 우적 상공께 올리는 편지(上襄陽于相公書)」의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아마 15개를 모두 버리고 이 시구절만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豊而不餘一言 풍부하되 한마디 군더더기가 없고
約而不失一辭 축약했으되 한마디 놓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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