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 한 장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

by 하늘밑 2025. 1. 4.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 골목길

 
오랜만에 이태원 참사현장을 찾았다. 2022년 12월 이후 2년만이다.이른 아침인지 인적이 드물다. 벽을 수놓았던 참사희생자들의 사진과 꽃송이, 추모 포스트잇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하얀 게시판 세 개가 용도를 못 알아보게 불편한 모습으로 서 있다.

2022년 10월 29일 핼러윈을 이틀 앞둔 토요일 밤 10시 15분경 이태원 일대에 13만여 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해밀톤호텔 서편 좁은 골목에서 총 159명이 사망하는 대형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폭은 3.2m, 길이는 10m가 조금 넘어 보이는 내리막 골목길이었다. 사망자 중 67%가 20대였고 64%가 여성, 10대도 13명이나 있었으며 14개국에서 온 외국인 26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태원역 1번출구 방향 보도블록 바닥에 반짝이는 동판이 보였다.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 이 동판만이 그날의 참사를 증언하는 듯했다. 그 날 인파의 밀집에 따른 시민의 안전을 지킬 최소한의 경찰인력이 없었다. 그들은 용산 대통령실 경비나 마약사범 검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은 폭력이다. 이태원 참사가 인재라는 증거는 넘치지만 참사의 책임자는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고 있다. 참사이후 유가족 생존자는 지속적인 2차 가해에 노출되었다. '이태원에 간 것이 잘못이다.', '나라 구하다 죽었냐.', '놀러 가서 죽은게 무슨 자랑이냐.' 등 사회적 참사를 폄훼하고 참사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렸다. 심지어 희생자 분향소 바로 옆에서 극우단체가 농성장을 세우며 유가족과 희생자를 향해 막말로 조롱을 가했다. 정부 기관이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유가족들은 참사 관련 브리핑도 받지 못했고 수습과정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2년 만에 어렵게 통과됐지만 특조위 임명은 더디고 예산과 인력 지원도 힘들어 보인다. 정부가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엄벌할 수 있는 의지가 손톱만큼이라도 있는지 심각하게 따져 묻게 된다.
 
멀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대통령은 참사 후 한번도 유가족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참사가 아니라 사고,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라고 했다.  무엇하나 정상이 없는 이 나라에서 되돌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자식의 차디 찬 주검을 안고 슬퍼했을 수많은 부모의 얼굴들이 골목에 선연하다.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이태원 골목길을 뒤로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

 

 

'사진 한 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자 화장실  (1) 2025.01.07
경기여고 113회 졸업식  (0) 2025.01.07
무안공항.....갖혀버린 꼬리  (1) 2024.12.31
휘파람 불며 가자 내일의 청춘아  (1) 2024.12.30
계엄군 청년의 사과  (3) 2024.12.06